[아침뜨락]이진순 수필가

나란히 줄서 있는 난을 바라본다. 잎 가장자리에 노랑 띠를 두른 천금, 돌에 붙어 하얀 꽃을 피우는 석란, 매년 꽃을 피워 나를 사로잡는 황금소심과 춘란이 곱다. 생일 선물로 받은 양난은 꽃을 피운지 한 달이 넘었지만 건제하다.

오늘은 벼루에 먹을 정성껏 갈았다. 한지에 붓을 들고 난을 친다. 마음대로 붓끝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이리저리 붓 끝에 힘을 주어 쳐보지만 뜻대로 치긴 어렵다.

학교에 있을 때 미술 선생님들을 존경했다.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은 알록달록한 물감을 풀어 하얀 백지에 원 두 개를 쓱쓱 그려 놓고 연분홍 물감을 사알짝 점을 찍듯 붓으로 그리면 싱싱하고 탐스러운 복숭아가 되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난을 치듯 그려 넣고는 이파리 두어개 그리면 아주 멋진 그림은 완성 되었다. 연월일과 호를 세로로 쓰시고 낙관을 찍으면 선생님 작품은 날개를 단 듯 완성 되곤 했다. 곁에서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내 눈은 빤짝거렸다. 신비한 장면은 마술을 보는 듯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림을 그리고 계실 선생님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시 한수 적으시곤 난을 치시던 분, 늘 성당 밑에서 풍경화를 그리시던 오씨 성을 가진 작가님의 초대로 화실을 간적이 있었다. 성탄이 가까울 때 이었던지 카드가 무척 많이 그려져 있었다. 그분은 말을 못하는 분이다. 큰 뜻을 품고 늘 대작을 그리셨다. 아마도 물감과 붓 자료를 사기 위하여 그린카드 들이 아니었나 싶다. 가끔 그분의 성함과 소식을 텔레비전에서 듣곤 한다.

추상화를 즐겨 그리던 여 작가님도 계셨다. 온갖 씨앗들과 새의 깃털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셨다. 아교를 중탕하여 씨앗을 화판에 붙여 작품을 만드셨다. 마치 참나무에 진을 먹기 위하여 풍뎅이가 모여 꿈틀거리는 모습처럼 보였다. 선생님은 늘 미지의 세계를 넘나들지 않았나 싶다. 상상의 나래를 펴 작품을 구상 하시는 그분의 방은 종묘상을 방불케 했다. 요즈음처럼 1회용 그릇들이 많았으면 정리가 되지 않았을까, 멋도 부릴줄 모르던 미술 선생님이었다. 코밑에 상처가 났는데 머규롬을 바르고 출근을 해서 전 직원을 웃음 나게 했다. 허긴 그때는 후시딘도 없을 때였으니까.

나도 어렸을 때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재료비가 어머니를 슬프게 만들어서 포기를 했다. 그러고도 끼를 잠재울 수 없어 미술 선생님들을 졸졸 따라 다녔다. 지금도 가끔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간다.

물질 만능시대에 넘치는 장난감에 요즈음 아이들은 시대를 잘 타고 난 탓인지 텔레비전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재주꾼들이 많다.

꿈이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노력을 하면 이루워 질 수 있는 것이 꿈이다. 이제 망구의 나이를 바라보며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참으로 열심히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살았지 않았나 싶다.

나름대로 자식들 뒷바라지를 최선을 다해서 하느라고 했지만 우리 집 막내는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겁도 없이 준비도 없이 어미가 되었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지만 경제적인 면이 허락지 않아서 힘이 들었다.

철부지 막내가 한마디씩 하는 그 한마디가 때때로 온종일 우울하게 하는 날이 있다.

삼남매가 결혼하여 6명의 손자 손녀들이 태어났다. 꿈이 있는 아이들로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향하여 타고난 끼를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향긋한 먹 향이 코끝을 스친다. 어설픈 솜씨의 난들이 피어난다. 치고 또 쳐 보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지만 부족함이 많았듯이 그림은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지 않는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우리 부부는 뜻이 맞지 않았다. 마치 하행선과 상행선을 달리듯 살았다. 정말 바보처럼 살았다. 남편의 취미는 고개 운동이 전부였다. 안일 무사 태평주의로 오직 부모 섬기고 형제간의 우애를 첫 번째로 삼았다. 요즈음 같으면 이혼 감이다. 다행이 남존여비 사상에 길 드려진 시대였으니 망정이지... .

뇌경색으로 14년째 바보처럼 가장의 자리를 지킨다. 때때로 서러운 응어리가 코끝을 시큰 거리게 하는 날이면 먹을 갈아 오늘처럼 난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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