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모처럼 늦잠을 자고 있을 때였다. 외출했다 들어 온 아내는 나를 깨웠다. 달콤한 늦잠이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아내의 말에 더 달콤함이 다가왔다. 바로 '호박잎' 때문이었다.

아내가 은행에 들렀다 나올 때였다고 한다. 은행 입구에서 몸이 작은 할머니가 무엇인가 팔고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호박잎 좀 사가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단다. 지난 번 청주에 사는 후배가 호박잎 전 사랑에 대해 얘기했던 게 떠올랐던 것이다.

호박잎 쌈도 아니고 호박잎 전이라니 신기했다. 어떤 맛일까? 호기심이 들었다.

아내는 할머니가 2천 원에 호박잎을 이만큼이나 주었다며 두 손으로 만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더 비싸도 될 것 같다며 할머니가 다 팔고 일찍 가셨는지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점점 날씨가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호박잎을 따서 묶고 준비해 버스를 타고 나왔으리라. 어쩌면 호박잎을 다 못 팔아 땡볕 호박잎처럼 축 쳐져 있지는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지글지글-

주방에서 고소한 냄새와 소리가 난다. 아내가 벌써 요리를 시작한 듯싶다. 막내로 자란 아내는 요리실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도 누가 누가 반찬을 주었다면 더 두 눈을 반짝이며 반겼기 때문이다.

처음 아내와 냉이를 캐러 갔을 때였다. 아내는 나보다 냉이를 더 몰라 눈앞에 냉이와 풀이 있는 데도 풀을 캐 담기도 했다. 심지어는 꽃밭에 풀을 뽑는 게 아니라 꽃을 뽑아내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내의 호박잎 전은 은근 믿음이 갔다. 아내가 만든 냉이 전과 배춧잎 전을 먹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방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고 설렘 가득이었다.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들으니 별 같은 노란 호박꽃과 반질반질 연둣빛 예쁜 호박이 생각났다. 어릴 적 갑자기 만난 소낙비에 큰 호박잎을 뚝 따 총총총 집으로 달려가던 생각도 났다.

여전히 호박잎하면 예전 먹던 호박잎 쌈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여름방학 할머니 댁에서 먹던 호박잎 쌈. 가마솥 뚜껑을 열면 밥 한쪽에 소복이 쌓여있던 호박잎은 그림처럼 남아있다.

아내가 호박잎 전을 만들어 파란색 테두리 원이 그려진 하얀 접시에 담아 왔다.

매운 맛을 좋아하면 청량고추를 송송 썰어 함께 만들면 좋다고 곁들인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내게 아쉬운 표정이다. 한 입 베어 물었다. 바삭바삭, 우와! 정말 맛있다.

아내는 요리법이 쉽다며 살짝 웃었다. 밀가루반죽에 묻혀 지져내기만 하면 된단다. 요리에 대해 정말 모르는 나는 그래도 호박잎 전에 대성공을 한 아내를 우러러 볼 뿐이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아내와 난 호박잎 전을 먹고 먹어도 할머니가 많이 준 호박잎이 엄청 많이 남아서 기뻤다. 호박잎 전을 다 먹을 때였다. 전원주택에 사는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년 가을 내가 호박잎 쌈 얘기하던 게 생각나 겸사겸사 호박씨를 심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잘 자라지는 않았지만 첫 호박잎을 땄다며 갖다 준다는 것이다.

저녁에 우리 집 주방은 호박잎으로 쌓였다. 오전 까지도 좋았지만 은근히 걱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요리 실력이 화려한(?) 아내는 많은 호박잎 전 만들 생각에 걱정. 나는 맛있는 호박잎 전도 한 두 번이지... 저 많은 호박잎 전을 먹을 생각에 걱정.

아내와 난 서로 마주보면 같은 생각을 한 게 전기처럼 통했는지 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호박잎처럼 넉넉하고 소박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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