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선면산수도' 돌아왔다

[중부매일 나인문 기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 중인 교포 김대영(91)씨가 세종시에 회화 144점, 도자 113점, 공예 및 기타 67점 등 324점의 유물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대표적인 기증 유물은 겸재 정선(1676∼1759)의 '선면산수도', 심전 안중식의 '화조영모도십폭병풍', 운보 김기창의 판화 등이다.

정선이 그린 선면산수도는 말 그대로 선면(扇面·부채형 화면)에 그린 산수화로, 앞쪽에 작은 언덕과 종류가 다른 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뒤로는 먼 산이 병풍처럼 배치돼 있다. 노년기 겸재의 원숙하면서도 정제된 필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시는 겸재의 '선면산수도'를 세종시 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심전 안중식(1861~1919)은 조선 말 최고의 화가로 손꼽혔던 장승업(1843~1897)의 제자로, 산수화와 행서에 능통했던 인물이다. 총 10개의 접힌 면으로 구성된 '화조영모도십폭병풍'은 독수리, 말, 닭, 해오라기 등 8가지 소재를 활달한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운보 김기창(1913 ~ 2001)의 판화 작품은 그의 천진난만한 세계관과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판화에 등장하는 세 마리 사슴과 학, 구름 등은 화목한 가정에 복이 깃듦을 상징한다.

이번 기증 유물에는 청초 이석우, 취당 장덕의 작품을 비롯해 조선 말엽 공주 탄천에서 활동했던 두산 정술원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19세기 말 북한 해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청화초화문호'를 비롯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제작된 다양한 도자기가 망라해 있다.

유물을 기증한 김 씨는 서울 경복고 재학 중 미군 통역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1956년 미국 유학 중 현지에 정착한 이후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무역업과 부동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민 1세대를 대표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알려졌다.

김 씨가 소장한 유물의 존재는 2019년 해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 조사 및 환수를 추진하는 문화재청 산하 전문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실시한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됐다.

김 씨는 당초 고향인 서울에 소장품을 기증하려 했으나, 그동안 수집한 유물이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의 회화, 도자기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대한민국 행정수도'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는 점을 들어 세종시에 기증하게 됐다.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유물을 관람할 수 있는 세종시립민속박물관과 2025년 개관 예정인 향토유물박물관의 존재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후문이다.

최민호 시장은 "해외에 있던 유물이 수도권이나 국립 대형박물관이 아닌 세종시에 자리 잡은 것은 이번이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가 있다"며 "이번에 기증받은 유물은 문화재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어 등록·보존 처리 후 시민들께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역사·문화발전을 위해 가치가 높은 유물을 지속적으로 수집할 계획"이라며 "시민들께서 문화재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있는 여건을 마련해 나가도록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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