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기현 중부지방산림청장

어느 때부터인가 일기예보를 들을 때면 귓가에 생소한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부지역 밤새 물폭탄, 쓸리고 잠기고', '물폭탄 비 또 온다'... 비는 자연 현상일 뿐인데 인명 살상 무기인 폭탄으로 묘사되는 현실이 무섭고 아이러니하다.

물폭탄 뿐 아니라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 재해는 일상적인 뉴스가 되었다.

시베리아의 38℃ 폭염, 호주 등의 대형산불, 러시아 영구동토층의 기름유출, 40℃를 넘어서는 유럽의 무더위, 2020년 우리나라에 나타난 54일간의 장마 등이 그것이다.

비가 많이 오면 우리는 산사태를 걱정한다. 흙 입자는 수분이나 식물 뿌리의 힘을 통해 결속되는데, 폭우나 진동 등으로 인해 흙 입자의 결속력이 떨어지면 경사면을 이루고 있던 토사가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 산사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약 63%가 산림으로서 OECD 국가 가운데 핀란드, 일본, 스웨덴에 이어 4위 수준으로 산림이 많은 국가이므로 산사태 피해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산림청은 산사태 정책의 주안점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두고 있다. 크게 '구조물적 대책'과 '비(非)구조물적 대책'으로 나뉘는데, 구조물적 대책은 시설물을 설치함으로써 재해를 예방하고 대응하고자 하는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사방댐이다.

사방댐은 급격히 불어난 물이나 토사를 막아 하단부의 농경지나 주택까지 피해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한다.

비(非)구조물적 대책의 핵심은 위험 상황 관리다. 이를 위해 생활권 중심으로 산사태취약지역을 지정·관리하고, 'KLES(korea landslide early-warning system)모델'을 통한 산사태 위험도 예측으로 주민 대피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KLES모델'은 강우량과 토양 저류량 사이의 비율을 기준으로 산사태 위험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에 따라 예측된 산사태 위험도는 지방자치단체의 산사태 예, 경보 발령이나 주민 대피를 결정하는 기초 정보로 활용된다.

산사태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건강한 숲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무가 없는 황폐한 숲을 상상해 보자. 적은 양의 비에도 토양은 쉽게 쓸리고 흘러내릴 것이다. 반면 초본류와 크고 작은 나무들이 고르게 자라고 있는 숲은 비가 오면 유기물 분해가 촉진되어 토양에 유기물 공급이 늘어난다.

이는 토양 미생물의 활력을 증가시켜 산림토양의 공극과 구조를 개선시키고 결과적으로 보다 많은 양의 강우를 저장할 수 있게 한다.

김기현 중부지방산림청장
김기현 중부지방산림청장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의 저수 능력은 연간 수자원 총량의 14%인 약 180억톤 수준인데 우리가 숲을 잘 보호하고 가꿀수록 저수 능력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오늘도 집중호우와 비 피해 관련 뉴스가 계속 흘러나온다.

숲은 산사태가 일어나는 장소로서 관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기상이변으로 나타나는 호우나 가뭄 피해를 줄여줄 수 있는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이 선물한 '안전장치'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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