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마흔여섯에

세상을 끝낸 흔적을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곳에서 그렇게 목숨을 던져 울음을 토하고, 바람에 맡기는 몸을 내던지는 현상을 그냥 보아 넘기기는 가슴이 허전했다. -<매미 소리를 들으며> 가운데

충북 증평 벌말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까치밥을 남겨놓은 감나무 있는 푸른 기와집에서 도시 손님을 맞았다.

너무 오랜 기간 목발을 짚고 걸었던 탓인지 요즘은 겨드랑이가 아파 마중나갈 엄두가 안난다며 미안하다는 인사로 낯을 튼다. 소년같은 미소에 청년의 목소리를 가진 시인은 올해 마흔여섯에 네 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 작가다.

자고로 등단을 했다면 수필은 50편 이상, 시는 100편 이상을 써놓아야 자질 있는것 아니냐며 부지런한 시작활동의 근황을 내비췄다.

지난 2003년 ‘기억을 위한 노러를 발표한 이후 소식이 뜸했던 이남로 시인(46)을 다시 만난 건 그가 수필가로 문학의 새로운 영역에 들어섰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다.

최근 시인은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가 주최한 제16회 장애인문학상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며’로 수필부문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문단에 입문한 것은 월간 순수문학 신인상(94)과 계간 솟대문학 신인상(97)을 통해 일찌감치 시 바다를 헤엄쳤다지만 수필은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태어난지 1년 4개월만에 낙상사고로 편마비장애를 갖게 된후 줄곧 집에서 시를 써온 작가는 늦여름과 풋가을 사이 울려대는 매미소리를 통해 유년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호평을 받았다.

지난 2000년 여읜 어머니는 8월말 되면 ‘모깃불 모락모락 피어오를 즈음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것만 같다’. 그 어머니가 해 주시던 보리밥에 열무 넣고 고추장에 된장국 넣고 비벼먹던 그 시절 추억이 계절 알레르기 마냥 추억을 타고 가을을 부른다고 전하고 있다.

시인에서 수필가로 삶과 문학의 지평을 넓힌 데는 서원대 백운복 교수의 영향이 컸다.

서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를 두 학기 수강하고 청강하기를 여러해. 스승인 백 교수는 지난해 장애인 문학상 동시부문 가작 당선 소식을 접하곤 수필에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90년엔가 장애인문인협회가 생겨서 시를 투고했는데 돼더란 말입니다. 이듬해 두번째도 되기에 이제 시 쓰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한 순간 세번째 부터는 아무리 투고해도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원대를 찾게 됐죠. 지금은 틈틈이 백 교수님의 조언을 들으며 시를 쓰고 있어요. 이제 수필에 당선됐으니 수필 50편은 써놓아야죠.”

수필 창작에 대한 다부진 포부를 느낄 수 있었지만 시인의 사이버 문학서재(http://member.kll.co.kr/yiienr/)에서 엿볼 수 있듯 그의 삶은 곧 시로 발언하고 느끼고 대화를 시도하는 듯 했다.

첫 시집 ‘눈이 내리지 않는 까닭’(1994)에서는 ‘한탄도 비탄도 세월 탓도 아닌’ 자신의 삶을 갈무리했고 두번째 시집 ‘하늘 향해 길을 가다’(2000)는 성지순례를 다니며 또 교회에서 집에서 생각날때마다 써 놓은 기도시를 엮어 세상에 내놓았다.

시인이 도움받고 도움준 60여명의 지인들 모습을 ‘시의 초상’으로 표현한 시집도 냈으니 세번째 시집 ‘네가 있기에 오늘 나는 너에게로 간다’(도서출판 새벽)이다. 그리고 지난 2003년 네번째 시집 ‘기억을 위한 노러(도서출판 솟대)를 펴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을 툭툭 소화되지 않는 시어들로 뱉어놓지만 물들지 않은 순수함으로 떨어진 시어들은 시보다 더 시적인 삶의 모습으로 감동을 안겨준다. 시인은 수필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로 시인은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장애인문인협회, 증평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동시집으로 ‘너의 가슴은 그릴 수 없다’와 ‘슬픔마저 사랑하리’를 펴내기도 했다. 시인의 수필당선 시상식은 17일 과천문화회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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