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산성′ 역사적 성격 밝힌다

수행승을 승병으로 양성하기 위해 신라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소재 「양성산성(壤城山城)」의 역사적 실체가 밝혀질 전망이다. 일명 태산석성(兌山石城), 연산성(燕山城)이라 불리는 이 산성은 해발 2백92m의 양성산 정상부에 놓여 있으며 둘레가 3천7백54척, 높이가 10척으로 청원군의 대표적 산성이다.

특히 성안에는 둘레가 1백 92척 되는 큰 연못과 신라의 축성술로 보여지는 특이한 구조의 수구(하수구)가 그대로 남아 있고, 현령이 제사와 기우제를 지내던 연못이 뚜렷하게 보존되고 있어,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끌어왔다.

이에 따라 군은 사업비 4천만원을 들여 산성에 대한 실측작업과 수습유물을 분석하여 앞으로 국가사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에는 둘레 약 1천m에 달하는 성벽을 정밀 실측하고 성내의 유물을 수습 정리하며, 유물출토 가능성이 높은 성황당터와 산 기슭의 고분군을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양성산성은 세 개의 산봉우리와 1곳의 계곡을 이용해 설축됐는데 산봉 정상부의 약산 아래 부분을 깍아, 더욱 험하게 만들고 성벽안쪽의 5∼20m 가량의 평지를 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또 북동쪽의 산봉에는 대석과 주초석 및 많은 기와조각이 별견되어 장대지(군사지휘소)로 추정되며, 남쪽 능선의 20m아래에 2중의 토축보루를 설치하여 공격해 오는 적을 성밖에서 차단하도록 했다.

성안의 곳곳에서 신라와 백제계의 토기편과 고려시대의 토기·자기편 및 와편이 발견되는 점을 미루어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설축된 후 고려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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