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峙·峴·嶺'은 모두 '고개' 관련 표현이나

嶺(령)·峙(티·치)·峴(현)은 모두 고개와 관련된 표현이지만, 그 차이점을 아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를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이건식 박사가 지난 10~11일 서원대학교(총장 최경수) 미래창조관에서 열린 '국어사학회-한국지명학회 공동 학술대회'에서 '조선시대 고유어 자연지명 분류어의 차자표기 특징' 논문을 발표했다.

▲ 대동여지도에서 청주 일대를 그린 지도로, 峙(지도우상 )와 峴(〃좌하)은 같은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峙는 嶺보다 작은 고개에, 峴은 峙보다 더 작은 고개에 이름을 붙였다.
한국지명학회(회장 서원대 박병철 교수) 등은 인터넷 발달로 검색 기능이 향상되면서 옛지명 연구에 관한한 괄목할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성과는 지명 전반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가령 '미호천' 할 경우 '미호'의 지명이 어디서 왔는가를 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김 박사는 이날 嶽·峰·嶺·岾·峙·峴·巴衣·巴多·津 등 지명 뒤에 붙는 한자형 명사를 중점적으로 언급,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이들 자연형 지명어의 조선시대 사용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황윤석(黃胤錫·1729 ~ 1791) 일기인 '이재난고'와 김정호의 '대동지지'를 고찰했다.

그 결과, 이들 자연형 지명어는 아무렇게나 혼용된 것 같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사용된 일종의 약속된 지명어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 박사에 따르면 황윤석의 이재난고는 ▶嶽과 峰은 빼어나게 솟은 산 ▶嶺은 가로로 비스듬한 고개로 峙보다는 높고 ▶峴은 小嶺으로 峙보다 낮은 고개를 뜻한다라고 적고 있다.

또 ▶'골'은 '洞'의 방언으로 옛날에는 '忽'(홀)로 불렀다 ▶岩은 큰 돌로 '바의'(巴衣)가 방언이다 ▶'바다'(巴多)는 '海'의 방언으로 '博多'(박다)로도 칭했다고 적고 있다.

이밖에 이재난고를 보면 '島嶼'는 같은 섬을 지칭하면서 '島'는 크고 '嶼'는 작은 섬에 붙는 지명이고, '津'은 물가를 왕래 출입하며 건너는 곳을, '우물'(于勿)은 방언으로 '井'을 뜻한다고 적고 있다.

황윤석은 바닷가 갯벌에도 관심을 가져, 지금은 매우 생소한 언어인 '漁箭'(어전), '漁條'(어조), '鹽坪'(염평) 등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漁箭'은 '어살'(魚沙兒)로 음차표기되는 언어로 대나무를 물속에 심어 물고기를 몰아잡는 방법을, '올'(魚兒)로 음차되는 '어조'는 물고기가 다니는 통로에 그물을 설치하는 것을 일컫는다. '염평'은 글자 그대로 '소금밭'을 의미하고 있다.

김 박사는 김정호의 대동지지(방언해 편)에서는 주로 산에 대한 지명어를 고찰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동지지는 '덕'(음차표기 德)은 언덕이 험하게 끊어진 ,곳 '낭'(〃朗)은 언덕이 벽처럼 선 곳, '隅'는 산길이 회곡된 곳으로 달리 '모로'(毛老)라고 불렀다. 이중 낭은 후에 '낭떠러지', 모로는 '모퉁이' 등의 파생어를 낳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밖에 해변이 험하게 들어간 곳은 '串'(곶), 물속에 돌이 쌓여 있는 곳은 '梁'(양), 진흙과 모래가 쌓여 배가 다니기 어려운 곳은 '草'(풀)로 표기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는 김현주(관동대), 송지혜(경북대), 차재은(경기대), 이장희(경북대), 김무림(강릉대), 조항범(충북대), 박덕유(인하대), 신중진(울산대), 황용주(국어원), 서형국(전북대), 임상석(성균관대), 방영심(이화여대) 등이 등단, 지명과 국어사학에 대한 심도있는 발표를 했다. / 조혁연

chohy@jbnews.com





■ 용어설명

☞황윤석 : 1759년(영조 35) 사마시에 합격하고, 1766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벼슬이 익찬(翊贊)에 이르렀다. 순조 때 도내(道內) 사림(士林)에서 그의 사당을 세웠다. 저서 중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와 '자모변'(字母辨)》은 국어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대동지지 : 김정호(金正浩)가 쓴 한국 지리서로 30권 15책으로 돼 있다. 1861년(철종 12) 편찬에 착수하여 1866년까지 보완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 지도 제작은 이 지리서 저술과 짝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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