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왕건 활동 영역과 관련 있다

우리나라 성(城)은 토성(土城)에서 석성(石城), 산성에서 평지성 순으로 발전했다. 이중 돌이 주된 재료가 된 산성은 그 공법에 따라 내탁외축과 내외협축이 존재하고 있다.

내탁외축 공법은 성벽을 한 쪽만 쌓아 올리고 그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밋밋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청주 상당산성이 전형적인 내탁외축 공법의 성으로, 축성법이 쉬워 조선시대까지 애용됐다.

반면 내외협축 공법은 성벽을 안과 밖 이중으로 쌓고, 그 안을 잡석 등 석재로 다시 채우는 공법을 말한다. 이 공법은 성이 매우 견고하고, 또 성을 수직에 가깝게 높게 쌓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산성은 돌을 쌓은 것이기 때문에 그 외벽의 모습은 비슷한 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대개의 산성의 돌들은 마치 성냥곽을 엇갈리게 쌓은 모습을 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 보통의 석성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산성이 충북 백두대간 주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천 덕산면 와룡산성, 단양 단성면 독락산성, 충주 살미면 대림산성, 보은 회남면 호점산성 등이 이에 속하고 있다.이들 산성이 지니고 있는 역사정보 코드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료나 백과사전은 이들 산성을 비교적 비중있게 소개하고 있다. ◆ 제천 와룡산성제천 덕산면 신현리와 수산면 덕곡리와의 경계를 이루는 산(해발 527m)에 위치하고 있다. 성 안에는 고산사(高山寺)라는 절이 존재하고 있다.와룡산성은 지금은 궁벽한 산골에 위치하고 있으나 과거에는 일대가 교통로 주요 길목이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죽령대로와 모녀현로(문경 동로면)를 동시에 막을 수 있다. ▲ 제천 덕산면 와룡산성, 단양 단성면 독락산성, 충주 살미면 대림산성, 보은 회남면 호점산성 등에는 흔치 않은 모습인 수직홈이 존재하고 있다. 보은 회남 호점산성의 수직홈 모습이다.(위에서 두번째 사진) 또 다른 사진은 제천 와룡산성 수직홈.
◆ 단양 독락산성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의 도락산(道樂山·694m)에 위치하고 있다.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로 추정되고 있으나 최초 축성집단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성둘레는 대략 4㎞ 정도로, 유사시 수천명이 수용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성 밑에는 돌틈에서 솟아나는 작은 샘이 존재, 성주민들이 이를 식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충주 대림산성

충주 살미면 대림산에 위치하고 있는 산성으로 전형적인 포곡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고구려, 신라, 백제가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각축을 하던 시기에 축조된 산성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사가 급하고 곳곳에 암벽이 형성되어 있는 등의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방어가 취약한 곳에는 2중 3중의 방어벽을 별도로 설치하는 등 산성 전체를 요새화했다.

한편 성 주변에는 창고건물 흔적이 풍부히 남아 있다. 따라서 후대에는 충주읍성의 물자를 비축하는 창고역할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에는 봉수터도 남아 있다.

◆ 보은 호점산성

회남면 남대문리 거교리와 회북면 용곡리 경계의 호점산에 위치하고 있다. 5개의 산봉우리과 계곡을 둘러싼 토석축산성으로 전체 둘레가 2.7㎞에 이르고 있다. 문지는 6개가 확인됐다.

이밖에 산성에서 발견된 토기, 기와조각 유물은 이 산성이 삼국시대 처음 축조됐고 고려시대에도 빈번하게 활용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산성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많아 자라고 있어 가을에는 송이버섯 많이 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당시 소장 양기석 교수)는 지난 2000년 제천 와룡산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 때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운 흔적이 관찰됐다. 일명 성벽 수직홈이다. 왜 석성에 수직홈 흔적이 남아 있고 또 충북지역 백두대간 산성에서 이 흔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것일까.

이와 관련, 지역 사학계에서는 ▶고구려 때 축조된 평양 대성산성이 이 수직홈 흔적이 남아 있는 점 ▶이들 4개 성이 정교하지 못하고 급조된 징후가 보이는 점 ▶축조시기가 후삼국시대 안팎이라는 점 등을 주목하고 있다.

이밖에 수직홈이 토성을 쌓을 때 사용됐던 판축기법(용어해설 참조)과 매우 유사하거나 조금 진일보한 공법인 점도 주목을 하고 있다.

지역 사학계 관계자는 "이들 산성에서 보이는 수직홈은 분명히 나무기둥을 세웠던 흔적"이라며 "이는 나무기둥을 미리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그 사이를 돌로 메꾸는 방법으로 성을 쌓은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당시 세워졌던 나무기둥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썩어 없어졌고 따라서 지금은 수직홈이 관찰되고 있다"며 "이같은 공법은 산성을 정교하지 않지만 빨리 쌓는데 크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런 축성법이 선대인 고구려 때 평양 대성산성에서 출현됐던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렇다면 후삼국시대 어떤 세력집단이 고구려 수직홈 축조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문가의 추리가 맞다면 백두대간 충북지역 산성에서 집중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수직홈은 다음과 같은 역사정보 코드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후삼국시대 한반도 북쪽을 세력권으로 갖고 있는 왕건이나 궁예가 이 축조공법을 응용, 충북 백두대간 지역에 산성을 쌓았다. 실제 이들 산성의 지역적인 분포도는 당시 왕건이나 궁예의 남쪽 활동선과 어느정도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왕건이나 궁예는 짧은 시간 안에 성을 축조했어야 하는 만큼 지역 호족들의 도움이 크게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성은 정교하지 않으면서 급조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후삼국 시대의 각축은 최종적으로 왕건이 승리했다. 따라서 이들 산성은 왕건과 당시 지역 호족들의 연합작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찮게 보이는 충북 백두대간 산성의 수직홈 흔적은 이런 역사정보를 지니고 있다. / 조혁연

도움말:차용걸 충북대교수, 강민식 청주백제유물전시관 학예사.

■ 용어해설

☞판축기법: 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고, 그 사이를 흙다짐 공법으로 메꾸는 축성법을 말한다. 이같은 공법을 사용할 경우 진흙의 강도를 높이면서 높이 쌓을 수 있다.

☞테뫼식: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거의 수평되게 산을 한 바퀴 둘러쌓는 것을 말한다. 마치 머리띠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테뫼식이라고 한다. 멀리서 보면 시루에 흰띠를 두른 것 같다고 해서 시루성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것이 많다.

☞포곡식: 성곽 안의 여러 개 계곡을 감싸며 축성된 것을 말한다. 수원이 풍부하고 내부 공간이 넓어 주로 장기전에 사용됐다. 규모가 테뫼식보다 큰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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