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정 / 충주대 유아교육학과교수
유아기의 발달 특성 중 하나는 자기중심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만일 아이들에게 "산타할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어떤 선물을 주실까?" 하고 물어보면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 "으~응, 인형" "강아지" 등의 대답을 한다.

유아들이 다툼이 잦은 이유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난 후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들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요즈음에는 아예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쓴 동화책들도 시판되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중에 '아기돼지 3형제' 이야기가 있다. 엄마돼지는 3형제에게 이제 집에서 나가 각자 자기 집을 지으라고 한다. 그래서 3형제는 각자 집을 짓기로 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첫째 돼지는 지푸라기, 둘째 돼지는 나무, 막내 돼지는 벽돌로 튼튼하게 집을 지었다.

여기에 심술장이 늑대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아기 돼지들을 잡아먹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아주 세게 입으로 바람을 불었기 때문에 첫째 돼지 집과 둘째 돼지 집이 날아가 버렸다. 첫째와 둘째는 간신히 막내 돼지네 집으로 피했고 그 덕분에 심술쟁이 나쁜 늑대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늑대 입장에서 다시 쓴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3형제 이야기'라는 동화책이 있다. 여기서 보면 늑대는 정말 억울하다. 왜냐하면 늑대는 애초 아기돼지들을 잡아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아기 돼지네 집에 간 이유는 단지 편찮으신 늑대 할머니에게 과자를 만들어 드리려는데 설탕이 부족해서 좀 빌리러 간 것뿐이었다.

그런데 아기 돼지네 집 앞에서 "설탕을 좀 나누어 줄 수 있니" 라고 말하려는 순간 하필 재채기가 났다. 과자를 만들던 중 코끝에 묻은 밀가루가 코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재채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바람에 아기 돼지 집들이 날아가게 된 건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절대로, 절대로 아기돼지들을 잡아먹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다. 이렇게 똑같은 사건도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가끔 본다. 동료 간에, 부부 간에, 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일로 서로 몹시 기분이 상해서 들려주는 각각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해석이 그렇게 다를 수가 없다. 결국 해결 방안은 얼마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려고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지 못하고 자기 연민, 자존심에 얽매이다 보면 점점 더 자기 입장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혹 다른 사람과 마음 상했던 일이 있다면 "글쎄, 나는 절대 그럴 생각이 아니었다니까요."라는 늑대의 항변을 한번 되새겨 보면 어떨까. 당장 필자인 나부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렇게 해 보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옥정 / 충주대 유아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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