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시호 / 음성 대소초 교사
오래 전에 방영된 '대장금'과 얼마 전 끝난 '왕과 나'의 '상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궁녀와 내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장금이와 조치겸, 김처선 등은 궁내에서 운명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궁녀란 원칙적으로 왕의 여자로서 왕 이외는 누구도 알면 안 되는 존재였다. 궁녀와 더불어 내시는 군주의 손발로 대통령제의 청와대 비서들 중 수행비서관, 경호관리, 부속실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조선시대의 르네상스를 연 영조는 아들 몫까지 가장 오랜 재위 기간인 52년간이나 왕위에 있었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45년간 군주 노릇을 하며 여색이 강해서 후궁 중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를 두었다. 희빈 장씨의 아들은 20대 경종이며, 숙빈 최씨 아들은 21대 영조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일곱 살에 궁에 들어와 숙종 비 인현왕후 처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미천한 신분이었다.

인현왕후가 폐비된 후 왕비의 생일상을 차려놓고 혼자 눈물짓다 숙종의 승은(承恩)을 입었다고 한다.

이렇게 궁녀나 무수리의 아들이 세자나 왕이 되면, 왕비는 안 되지만, 빈이 된다.

궁녀의 종류는 다양한데, 궁내에서는 우선 지밀(왕, 왕비의 침전과 대청 등 근무)이 있고, 침방(옷 이부자리 제작), 수방(수를 놓는 일) 생과방(음료, 과자 담당), 소주방(음식담당), 세수간(세숫물과 목욕물), 세답방(빨래)으로 구분돼 있다.

계급은 정5품에서 종9품까지 직급이 있으며 방마다 궁녀 전체를 총괄하는 제조상궁과 부제조 상궁이 있었는데, 이들의 힘이 막강했다. 또한 궁녀 밑에는 방자, 취반비, 무수리 등이 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판내시부사 김처선 처럼 왕을 보좌하는 내시부의 최고수장을 '상선'이라고 한다.

내시는 왕의 비서관 역할을 하던 거세된 남자 관리'를 가리키며, 고려시대에는 환관과 내시로 구분돼 있었다. 내시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을 위해 언제라도 대신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했고, 내시로서의 자질시험 또한 주로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데 집중됐다.

서양에도 내시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싸리쓰' 그리스어로는 '유누코스'로 표기하는데 이는 '침실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고, 내시제도는 기원전의 페르시아 제국, 그리스, 로마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과 터키의 오스만 투르크제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탈리아,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만 존재했다.

조선시대 궁녀는 전성기인 영조 때는 600명, 쇠락기인 고종, 순종 때는 200여명 이었고, 내시부의 정원은 16개 관직에 140명이었다.

군주시대 궁녀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내시의 수장 '상선'은 목숨을 걸고 왕을 보호했다.

요즘처럼 대통령제에서 청와대 참모들이나 비서들은 치밀하게 정책을 마련하고, 소프트파워 리더십으로 여론과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겠다.

또 대통령이나 가족, 형제들을 잘 관리해, 퇴임 후 대통령주변 인물이나 비서들 언론이나 검찰, 법원에서 나쁜 일로 안 찾도록 했으면 한다.

군주시절의 궁녀와 내시들을 보면, 요즘 비서진들 바른 역할에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류시호 / 음성 대소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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