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우 / 충북도교육위원
세월의 흐름에 매듭이 있을까만, 사람들은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위에 인위적인 눈금을 매기고, 해마다 송년회다 해맞이다 하면서 '해 가름' 의식들을 치르곤 한다.

그런 자리들마다 으레 '해가 갈수록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얹어 덕담들도 나누게 되는데, 올해는 그런 인사치레조차 주고받는 마음들이 가볍지가 않다.

"작년엔 그나마 실망이었으나 올해는 아예 절망"이라는 탄식, "문제없는 곳이 없고, 무엇이 문제인지―문제인식조차 뒤집혀버린 시대"라는 개탄이 끊일 날이 없다. 나만 이럴까. 내가 한쪽으로만 귀를 열고 있어 그런가.

주변에 들끓는 걱정들은 경제난에 관한 것들이 단연 1순위지만, 교육과 관련한 것들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러던 중, 요즘 귓등으로 흘려들어 넘길 수 없었던 화제 하나는, 내게도 나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수구집단이 준동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희생양을 만들어 마녀사냥을 벌이게 되는데, 요즘 그 대상으로 전교조가 다시 '찍힌' 것 같다는 얘기였다.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망측한 예언이지만, 악담이기보단 걱정 어린 진정일 터였다.

미상불, 심상찮은 징후들이 잇따르고 있기도 하다. 한 극우단체는 해묵은 색깔론으로 '전교조 잡기'에 나섰고, 서울교육청은 일제고사 문제로 7명의 교사들을 해임시켰다. 그들로서는 전교조 교사들의 행태가 문제요, 전교조만 제거하면 교단안정화, 교육입국이 절로 구현되리라 믿는지 모르겠다. '미운털'을 뽑아 제물로 삼으면 원망의 표적도 바뀌리라는 헛꿈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정말 그들이 문제여서, 그래도 되는 것일까.

전두환 정권 말기에 '문제교사 식별법'이라는 지침이 있었다. 지금 보면 실소할 내용이지만 ▶촌지·채택료를 받지 않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자주 이의를 제기하는 교사 ▶학생지도에 지나치게 열성인 교사 ▶학급문집·신문을 만들고, 학생들과 야영·답사를 자주 가는 교사 등이었다. 또 어떤 자료에는 ▶개량한복을 즐겨 입음 ▶키가 작고 화장을 하지 않음(여교사) ▶결손가정, 어려운 가정환경 같은 황당한 내용도 있었다.

어쨌든 그 후, 그들에게는 법외노조(전교조)를 결성했다는 '구실'이 씌워져, 기어코 1500명 넘는 인원이 '척살'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90년대에는 '요시찰 교사'의 요건들도 다시 업그레이드되는데, ▶학생들에게 비판의식을 길러주는 교사 ▶해직교사들을 돕거나 복직시키라고 청원한 교사등이 주로 찍혔고, 심지어 ▶학부모 초청 회식에 불참하는 교사가 그 반열에 들기도 했다.

그 무렵 교사들 간에 회자되던 경구가, "문제 시대, 문제교사는 아무 문제없는 교사다"였다. '문제 있는 시대에 문제교사로 내몰리는 교사는 실은 아무 문제없는 교사'라는 뜻과 함께, '정말 문제시해야 할 교사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교사'라는 의미가 포개진 말이었다.

요즘 일제고사 건으로 관련교사들이 해임에 처해지는 것을 보면서, 이 시대가 정말 제대로 선 시대인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교사들의 진정이 담긴 발언과 면모들을 인터넷 동영상(전교조 본부홈피)으로 보다보니, 20년 전 내게 씌워졌던 형틀 자국이 다시 욱신욱신 저려오기 시작했다. 김병우 / 충북도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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