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전원 / 전 청주교육장
버스의 옆자리에 앉아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의 결의에 찬 이야기를 들었다. 맞벌이인 아들 며느리를 대신해 세 살짜리 손자를 돌보고 있는데 그 손자가 TV에서 홍보하는 장난감 게임기를 보고 사달라고 울며 보채기에 내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며칠을 시달리다가 추위를 무릅쓰고 게임기를 사러 마트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 / 왜 / 게임기 사준다고 약속하고서 왜 안 사줘요. / 내일 사준다고 약속 했잖아. / 내일 사준다고 한 것이 언젠데 또 내일이야"/ 알았어. 내일은 정말로 꼭 사다 줄 테니까 울지 마, 응/ 우리 선생님이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랬어. 할머니도 거짓말쟁이 안 되려면 내일은 꼭 사줘야 돼, 알았지 / 그래, 알았어. 내일은 꼭 사줄게.

손자 울음 달래려고 얼떨결에 한 약속이라 까마득히 잊었었는데, 그 다음날부터 손자와 마주치기만 하면 할머니에게 독촉을 한다고 했다.

거짓말쟁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었지만, 어린 아이와의 약속은 꼭 지켜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며느리한테 게임기에 대한 사연을 털어 놓고 용돈을 받아 게임기를 사러가는 길이라고 했다.

약속은 꼭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약속은 깨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하고,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 바보라고 하는 등 자신의 사기성 약속을 합리화 하면서 약속 깨기를 밥 먹듯 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의 일상은 매사가 크든 작든 약속의 연속이다. 쉽게 약속하고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많은가 하면, 깨질 가 봐 약속하기가 겁이 나 웬만하면 약속을 하지 않는다는 이도 있다.

어쨌든 악속은 잘 지켜져야 하는 것인데 우리 주변에는 이 소중한 약속을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바람만큼도 여기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아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흐리게 하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무책임한 약속 불이행이 그렇고, 국민들과의 약속으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고 나서는 언제 그런 약속을 했었느냐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회용 정치인들이 그랬으며, 선의의 거짓말도 있겠지만 자녀들과의 금쪽같은 약속을 어쩔 수 없이 도둑맞는 경우도 그랬다.

오죽해서 자녀와의 약속을 못 지킬까마는 상대방의 기분을 맞추기 위한 그런 면피용 약속은 이젠 그만 했으면 한다. 못 지킬 약속은 상대방의 노여움을 사는 한이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비록 자신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되더라도 말이다.

가족 간이나 교사와 학생 간, 친구간이나 이웃 간 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지역주민이나 국민과의 약속이라면 더욱 그렇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제간의 신뢰도와 두터운 신용의 기초가 바로 이 약속의 실천에서 시작됨을 이해한다면 약속 지키기를 생활화 하는데 게을러서는 안 되겠다.

거짓말쟁이 할머니라는 별명을 듣지 않으려면, 공약(空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존경받는 스승이요 믿음직한 지도자가 되려면, 행복한 나와 이웃 그리고 잘사는 국가와 온 인류가 되려면, 훨씬 더 좋은 내일을 위해서 지키자고 한 약속 꼭 실천하는 내가 되는데 주저하지 말기를 간절히 소망해보자. 김전원 / 前 청주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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