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우 / 충북도 교육위원
난태생 동물 중에 자기 알을 남의 둥지에 낳아 부화와 새끼양육을 의탁하는 부류가 있다. 이들의 이런 짓을 '탁란(托卵)'이라고 하는데, 뱁새 둥지에 의탁하는 뻐꾸기의 행태가 대표적인 예다.

이런 모습들 앞에서 우리는 '생의 외경'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사에 비추어 '얌체 같다'고 감정이입을 하기도 한다. 특히 그렇게 부화된 뻐꾸기 새끼가 뱁새의 알이나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쳐내는 것을 보고는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뻐꾸기 새끼를 제 새끼인 줄 알고 부양하는 뱁새의 아둔함을 보면서는 속을 끓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탁란'이 요즘 새삼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지자체들이 앞 다퉈 추진하는 '명문고 육성'사업들과 관련해서다. 전북 순창군의 '옥천인재숙'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자녀교육문제로 인한 이촌향도 추세의 완화와 지역인재 양성에 기본 취지가 있다. 순창군은 재정난 속에서도 매년 수십억을 들여 상위 20%의 학생들을 무료 기숙시키면서 대도시 입시강사들의 특강까지 붙여준다.

이 사업은 우수학생에게 편중된 특혜와, 국민혈세로 사교육을 조장하는 문제 등으로 하여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일약 전국적인 모델로 떠올랐다. 사업의 바탕인 '지역인재양성론'에는 '인재가 지역을 먹여 살린다' 는 이데올로기가 깔려있다. 그러나 주문(呪文)처럼 외워대는 "1명의 영재가 100만명을 먹여 살린다" 는 말도 "잘 키운 장남하나 온 집안 먹여 살린다" 던 옛말을 재포장한 현대판 미신일 뿐이다. 집안이나 지역이 다 그렇듯이, 특출한 개인보다 구성원 전체의 역량이 모여 공동체의 힘을 이룬다. 따라서 '인재양성론'에 눈멀어 특혜를 편중시키면 필시 그것을 노리는 틈입자들이 꼬인다.

최근 지역 명문고들에 타지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인재유입' 으로 반기기만 할 일일까.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학교에 주어진 특혜들이다. 지역균형선발제 같은 이점들도 그 타산 속에 의당 들어있다.

미국 명문대 특별전형에 우리나라 지역균형선발제의 모델인 '후진국TO' 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가로채려고 후진국으로 유학을 가는 한국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 눈먼 교육열이 지역 명문고엔들 향하지 않을까.

이러한 현상들에 겹쳐 자연계의 '탁란'이 오버랩 되는 것이다. "유입학생이라고 지역인재 되지 말라는 법 있느냐" 는 볼멘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꾸만 순진한 뱁새의 허망한 헌신이 떠올려지는데 이것은 그들의 기대와 노력에 대한 무례요, 모독일까.

며칠전 지역 명문고들에 외지학생 입학을 불허하거나 제한할 방침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정부당국도 필자와 비슷한 우려를 한 모양이다. 서열 외 그 어떤 변인 분석도 불가능한 '전형적 일제고사' 인 수능의 전면공개 후, 그나마 유일하게 건져낸 성과가 아닌가 싶다. 김병우 / 충북도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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