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영호 / 충북문인협회장
마당의 대추나무에 한 쌍의 이름 모를 새가 날아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새들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으나 듣는 이에 따라서 운다고도 하고 지저귄다고도 한다. 우리가 저들의 소리를 우는지 웃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사람의 말을 저들 새들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모르듯이 그들도 모를 것이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후렴구다. 작품의 유래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에 작자, 성격 등의 문제에서 정설이 없고 여러 견해가 있는 노래로 우리말이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 정체불명의 후렴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틀림없는 우리말임에도 무슨 뜻인지 이해 못하는 것은 내 자신의 무지다. 언뜻 야린 듯 한 이 후렴구를 생각할 때마다 아프리카 토인들이 축제에서 지르는 소리나 아랍어로 된 의성어, 혹은 알프스 산악지대 사람들이 부르는 독특한 창법의 요들송을 떠오르게도 한다.

요즘 한창 난무하는 모국어와 외래어가 무차별 조합되어 묘한 노래가 창생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쒜웰라 쒜웰따와 쒜칭컹꾸와 웰●스라엘' 이 또한 누가 듣고 이해를 할까.

데칼코마니. 나비다. 한쪽 날개를 판에 박은 또 한쪽의 날개. 대충 여러 물감을 묻혀 두 겹으로 반을 접어 눌렀다 펴면 색과 색이 배합되고 엉키어 나타나는 환상적 효과. 데칼코마니를 처음 시도해 보면 꼭 나비 날개 모양을 만들게 된다.

그때부터 호기심이 유발되게 되고 서서히 색의 세계로 몰입되게 된다. 무심코 자꾸 나비 모양을 만들어 가다 보면 색깔의 화려함에 도취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비를 그려 냈지마는 데칼코마니는 나비가 아니었고 두 개의 대칭된 색과 색의 조화로움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옹헤야' 오래 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부른 가요이다. '옹헤야'는 '올해야'라는 부름말인 셈이다. 올해야말로 꼭 풍년이 들 것이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 '옹헤야'는 오래된 민중가요다. 먹을 것이 궁해 배고팠던 때 '올해야말로'가 발전되어 '옹해야'가 되었다면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은 어떤 깊은 의미가 들어있는 것일까.

실연(失戀)의 슬픔을 잊기 위해 청산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의 노래, 왕으로부터 버림받거나 그 밖의 어려움을 잊기 위해 청산을 찾으면서도 삶을 집요하게 ●는 지식인의 노래, 여인의 한과 고독을 담은 노래, 현실의 시름 때문에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노래가 청산별곡의 후렴인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일수도 있겠다. 대추나무 가지를 옮겨 가며 새가 울고 있다. 지저귀고 있다. 아니다. 새들은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나도 덩달아 그들 따라 나비의 다른 한쪽 날개가 되어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데칼코마니로 노래를 불러 본다. 반영호 / 충북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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