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주말여행]추사고택 ㅁ자형 안채·ㄱ자형 사랑채 '고즈넉'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아이템으로 지역축제가 한창인 지금 가족끼리, 연인끼리 번잡한 곳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듯 싶다. 때로는 조용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고 싶고 차분한 봄을 만끽해보는 것도 제법 운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 옆엔 노란 개나리가 한층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 산마루엔 철쭉과 진달래가 손짓하며 점점 마음을 흐트리기까지 하는 계절 봄이다.

# 슬로우시티(Slow City) 예산

예산군은 느리게 사는 삶으로 행복도시를 만드는 '슬로시티(Slow City)' 인증에 도전해 지난해 12월 중부권 최초로 슬로시티(cittaslow) 인증 선포식을 개최했고 국내에서는 여섯 번째, 전 세계적으로는 121번째 슬로시티 가입도시로 인증 받았다. 오는 5월부터는 옛길 복원, 슬로시티 방문자센터 조성 등 슬로시티로 거듭날 예정이며 지역관광 활성화를 위해 코레일 전북본부와 '장항선 열차타고 슬로시티 예산 가자'는 운영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느림의 미학과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는 천혜의 자연친화적인 고장에서 옛 고택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현장학습에도 도움을 주고 부모님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할수 있는 고풍스러운 공간. 또한 멋진 드라이브 코스와 시골 들녘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까지 한꺼번에 만끽할수 있는 장소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예산의 유명한 관광지로 손꼽히는 추사고택과 화엄사에서 차분한 봄맞이를 해보는 것을 강추하고 싶다.

# 신암면 추사고택과 백송

예산군 신암면에 위치한 추사고택은 조선후기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솟을 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ㄱ자형의 사랑채가 나오고 남쪽엔 한칸,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으며 김정희선생의 친필인 농상실(충남문화재자료 44호)이 걸려 있다.

또한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으며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인 홍문이 있다.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가면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없는 희귀한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해 치유하였고 지금까지 집중 보호, 관리되고 있다.

한편 예산군은 지난 4월 1일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관람권을 대폭 수정했다. 그동안 디자인과 색상이 조잡하고 기념품으로 보관할 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 관람객 대부분이 현장에 버리고 가는 등의 문제점이 제기돼 이를 개선키 위해 관람권을 새롭게 바꾼 것이 주효했다.

이번에 바뀐 관람권은 앞면에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과 '추사고택' 전경을 넣었으며 뒷면에는 추사선생의 작품 중 널리 알려진 작품과 해설을 덧붙여 만들었다.

▶입장료 : 성인 500원 / 군인.학생 300원 / 어린이 200원 / 65세 이상 무료

▶교통편 : ▷서울~ 경부고속도로 천안 IC ~예산 신례원~ 신암 추사고택 1시간 30분 소요 ▷대전~ 대전-당진고속도로 예산수덕사 IC~ 예산 오가~ 신암추사고택 1시간10분 소요

# 정갈한 요사채, 화암사

추사고택에서 10분거리에 위치한 화암사에 가면 추사 김정희선생의 옛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오석산 아랫자락에 위치한 화암사는 추사나 그의 일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이다. 왜냐하면 화암사를 중건한 김한신이 김정희의 증조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한신은 영조의 부마로서 영조 임금의 둘째 딸이자 사도세자의 누이동생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로 봉해졌는데 이들 부부는 죽은 후에 용산 아래에 위치한 앵무봉에 합장되었다. 살아 생전에 사찰과 맺은 인연이 죽어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화암사는 가까이 가보아도 사찰 입구에 위치한 정갈한 요사채에 의해 사찰이란 느낌이 잘 들지 않는 그런 곳이다. 아주 오래된 고택의 편안함을 주는 요사채를 지나야 비로소 사찰에 들어서게 되는 데 곳곳에 추사와의 인연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이 산재해 있다. 게다가 요즘은 비구니 스님의 수도도량으로서 시골 사찰이 갖는 고즈넉함과 단정함까지 느낄 수 있다.

옛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고 다만 삼국시대 절이었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화암사의 역사는 문헌을 전래되는 것이 거의 없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절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다 현재는 수덕사 유물전시관에서 소장 중인 '화암사중수건기(華巖寺重修建記)' 현판에 절의 연혁이 기록 되어 있어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이 중건기는 1848년(헌종 14)에 김명희(1788~?)가 짓고 김상희가 쓴 뒤 조석신이 새긴 것이다.

김명희는 서예가이자 금석학자,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동생인데 학문이 깊고 글과 시문에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이 현판문의 내용으로 절의 역사를 알아보면 1752년(영조 28) 본관이 경주인 김한신이 그의 아버지 김흥경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절을 중건했으며 김한신은 영조 임금의 둘째 딸 화순옹주의 남편으로서 월성위에 봉해졌는데 사후에 부부가 용산 아래 앵무봉에 합장되면서 김한신 일가가 화암사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1846년(헌종 12) 절이 허물어지며 퇴락되자 김명희가 여러 친지와 더불어 무량수각ㆍ요사ㆍ선실ㆍ시경루ㆍ창고 등을 짓고 옛 법당터에 약사암을 중건하고 삼존상을 봉안했다.

이처럼 화암사는 조선 후기에 경주 김씨, 특히 김정희 일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김정희 유적지, 화순옹주홍문(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45호) 등 예산에는 본래 김정희 및 그의 일가와 관련된 유적이 많다. 관람료, 주차료 무료. 최현구 /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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