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해외 출장 일정이 잡히면 나보다 가족들이 더 흥분한다. 아내는 공항 면세점에서 가방이나 시계, 목걸이, 신발 등 소위 여성들의 로망인 명품을 사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들도 동네 문구점에서 만날 수 없는 색다른 학용품이나 예쁜 옷을 선물로 받고 싶다고 아우성이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이 같은 소망은 싸구려 볼펜 몇 자루와 과자 봉지를 손에 쥐는 순간 실망과 아쉬움으로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여유로우면 단연 면세점 투어를 하게 마련이지만 고가의 명품을 살 수 있는 여건도 안 될 뿐더러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앞서니 선뜻 구매욕구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땅의 여성들은 왜 명품에 열광할까 생각하며 참으로 아이러니한 사고와 생리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생각에 젖는다. 이와 함께 명품이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증이 발동한다.

명품은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 장인의 기예와 창조적인 디자인, 그리고 소비자의 마음속으로 풍덩 빠질 수 있는 감성마케팅 등의 결정체다.

프랑스 파리에는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공방이 70여 곳이나 달한다. 의류, 가방, 시계, 구두, 악세사리 등 수많은 명품 브랜드 뒤에는 이들 공방의 숨은 노력이 있다. 예컨대 '르사주' 공방은 샤넬, 발렌시아가, 입센로랑 등 세계적인 명품을 만드는데 조연 역할을 한다. 디자이너가 스케치 하면 장인은 한 땀 한 땀 공들여 자수 작업을 하고 섬세하며 미려하게, 꼼꼼하며 멋스럽게 마감을 한다.

프라다, 구찌 등의 세계적인 명품을 생산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전통공예와 현대적인 디자인의 조화 및 소통을 통해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만들고 있다.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공예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공예나라 장인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패션디자인의 도시 밀라노, 유리의 도시 베니스 무라노, 금속공예의 고장 나폴리, 도자기의 고장 폼페이 등 차별화된 문화브랜드를 자랑하고 있다.

물론 마케팅 기법과 스토리텔링도 명품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찌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 의해 유명해졌다.

존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이자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 재클린이 60~70년대에 구찌의 작은 백을 들고 다니자 세상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 '재키'라 부르면서 여성을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국의 왕세자비 다이애나를 위해 양가죽으로 정사각형의 가방을 만들고 체크무늬로 디자인한 크리스찬 디올 역시 살아생전에 왕세자비가 애용하면서 많은 여성들로부터 사랑받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아주 특별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명품만을 고집하던 여성들이 명품 그 이상의 가치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것에 마음 빼앗기고, 유명 브랜드에 현혹되었던 여성들이 자신만의 멋과 향기로움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 변화의 중심에 청주시가 있다. 주부 200여명이 매년 한국공예관에서 도자, 한지, 규방, 염색 등의 창작활동을 하더니 아예 동아리를 만들고 공방을 운영하며 새로운 예술의 둥지를 틀었다.

더 나아가 버려지고 방치되었던 옷가지를 활용해 개성미 넘치는 패션가방을 만들고, 사이다병이나 와인병을 이용해 화병과 벽시계를 만들며, 도마나 폐목을 응용해 예쁜 벽걸이 작품을 만드는 등 작가 이상의 역량과 열정과 창작의 에너지가 불꽃피고 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자신의 영혼과 손길과 예술이 손을 맞잡았으니 기성품이나 명품에서 볼 수 없는 애틋함을 느낄 수 있고, 개성미가 돋보여서 좋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시간과 재능과 역량을 결집시켜 만들었으니 소중하게 간직하고 멋스럽게 활용하며 생활미학을 실천하는 매력이 있지 않을까.

그리하니 청주는 창조와 변화와 혁신과 소통의 중심이다.

동네 아줌마들의 작은 반란이 문화도시, 문화복지라는 변화의 물꼬를 틀 것이다. 맑고 푸른 도시로 가는 길에 주부들의 행복한 반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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