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부장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군 생활을 했던 80년대 대한민국은 모든 군인들에게 먹고 자고 입을 수 있는 권리 외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틀에 한 갑씩 건빵 배식하듯 나눠 주었으며 틈틈이 담배 한 모금씩 빨며 고단하고 힘든 병영생활을 달래곤 했다.

고된 훈련과 함께 전우들끼리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댕긴 뒤 돌려가며 맛보는 순간은 10cm의 행복이자 전우애가 불꽃피는 찰나의 미학이며, 연인들의 키스처럼 덧없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군인들에게 담배는 닫혀있는 사회의 탈출구이자 작은 위로이며 안식처였다.

16세기에는 담배가 약초로 쓰였다고 한다. 인디언들이 종교의식이나 고통의 치료제로 사용하던 냄새 지독한 풀은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넘어가면서 기적의 영약으로 이름을 날렸다.

배에 가스 찰 때, 개에 물렸을 때, 그리고 피부질환이 생겼을 때 담배의 치유력을 신봉했다.

심지어는 담배를 방부제로 사용하기도 했으며 두통약으로 활용하거나 기억력이 나쁜 사람에게는 담배연기가 효험이 있다고 했다.

1665년 런던 대역병 때는 흡연을 권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것이 아니고 잘못된 정보나 미신에 의해 바이러스처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담배는 전쟁 유발의 동기로, 부의 축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전쟁이 없었다면 담배도 없고, 담배가 없었다면 미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 전체를 중독 시켰다. 나폴레옹의 반도전쟁 때 참전했던 영국 병사들은 스페인 병사들이 시가를 태우는 것을 보고 이것을 궐련이란 편리한 형태를 만들어 내면서 세계 곳곳의 전장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군인들은 전쟁터의 죽음과 추위와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담배를 피워야 했고, 담배 재료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장에서는 담배가 요긴했던 것일까. 전장의 병사와 담배는 짧은 삶을 살다가 불에 의해 한 줌의 재로 바뀌는 소모품이라는 공통점도 안고 있어 군인들은 타오르는 불과 연기, 냄새와 꺼져가는 재를 보며 위로를 삼아야 했다. 이렇게 전쟁과 함께 번진 담배 연기는 미국이 탄생하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은 담배를 얻기 위해 인디언들을 무차별 학살하거나 몰아내고 담배 재배로 모은 돈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남북전쟁은 '담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남부는 담배 수입으로, 북부는 담뱃세로 전비를 충당했으며 전쟁을 통해 미국 전역으로 담배가 확산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 때 담배를 전시 필수품으로 선포하고 담배 재배업자의 병역을 면제해 주었다.

담배는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목숨을 담보로 한 치명적이고 못쓸 상품이다. 그렇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이자 세계 인구의 7분의 1이라는 중독된 소비자를 갖고 있는 꿈의 상품이다.

신규 소비자만 확보되면 별도의 관리가 필요 없고, 외상 거래를 하지 않으니 판매하는 족족 기업과 나라의 곳간에 돈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담배시장의 '빅 토바코3'가 있는데 필립 모리스, BAT, JT라는 거대 회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1847년 런던의 본드 스트리트에서 작은 담뱃가게로 시작한 필립모리스는 빅토리아 왕실의 전속 담배 제조사가 되면서 영국은 물론 미국을 대표하는 담배회사로 성장했다. 담배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말보로를 비롯해 버지니아 슬림, 체스터 필드, 베이직 등 유명 담배브랜드를 탄생시켰다.

BAT는 1900년대 미국과 영국의 담배 회사들 간의 휴전 절충안으로 건립되었으며 던힐, 켄트, 럭키 스트라이크 등을 생산한 회사다. JT는 일본의 대표적인 담배회사로 세계에서 가장 충성도가 높은 흡연자들을 보유한 일본 시장의 상당수 소비자를 갖고 있다. 이처럼 담배는 세상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으며 소슬한 역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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