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박상언 한국지역문화지원協 사무국장·문화평론가

기업을 경영하는 한 친구가 어느 모임에서 들었다며 전했다.

취임한 지 일 년 남짓 된 꽤나 알려진 어느 회사의 월급 사장은 직원들과 곧잘 회식도 하고 매주 수요일 저녁이면 스포츠 활동도 함께 하는데, 정작 직원들은 안 좋아하는 것 같다며 고민하더라는 이야기. 실물경기가 침체된 데다 일에 너무 지쳐 그럴 것이라는 상식적인 해석을 달면서도 뭔가 개운해 하지 않는 눈치였다고 한다.

한때 잘 나가던 회사가 최근 그저 그런 회사가 되고 말았다는 한탄 끝에 나온 고백이었는데, 임직원들의 노력에 상응하는 성과가 좀체 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넉넉한 밥상을 마주하거나 적당히 땀 흘리는 행위를, 대개는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회사의 직원들이 경영자와 함께 하는 회식 자리에서 편하게 먹지 못하고 또 함께 운동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그와 같은 식탁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조차 꺼려하는 직원들은 담배를 피운다거나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뜬 뒤, 돌아와서는 다른 데 앉을 것이 분명하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식탁에는 자신이 임명한 몇몇 간부들만 억지춘향으로 붙어 있을 것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한 경영자의 인성이나 인격을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런 경영자는 열이면 열 다, 회식이나 체육 행사 따위를 너무 대단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이들 행사가 얕은맛을 더하는 양념일 뿐 조직의 경영에 근본적으로 기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눈앞의 과업과 그 완수를 위한 직원들의 착한 복종과 양적 헌신을 중시한다. 자신의 리더십을 탓하기보다 직원들의 팔로우십을 질책한다.

내부 만족도가 아무리 낮아도 고객 만족도만 높으면 된다. 늘 되풀이되는 직원들의 야근이나 휴일 근무가 회사 운영상의 문제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는다. 안 그런 데가 어디 있느냐며 오히려 뿌듯해한다.

시스템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시스템이 과업에 우선한다는 말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시스템에 과업이 실릴 때 그 과업이 지속적인 성과를 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과업의 성과가 제도와 체계의 합리성에 제곱 비례한다는 것은 더더욱 알 리 없다. 물론 직원 만족도와 고객 만족도가 손잡고 함께 간다는 것을 모를 수밖에. 자신의 임기 내 성과에 치중하므로 '지속가능한 경영'도 허공에 던지는 공염불이다.

이렇게 경영학의 ABC를 길게 늘어놓은 것은 문화행정의 한 목표가 '행정의 문화화'임을 말하기 위해서다. 민간 기업이든 공공 조직이든 그 행정은 점점 관료화하기 십상이다.

관료화한 행정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의 권위적인 행정편의에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행정편의적 사고는 어떤 사안이든 자신을 중심에 둔다. 내부 고객에게는 나만 믿고 일만 하라 하고 외부 고객에게는 행정상의 형식과 절차만을 앞세운다. 문화행정은 일반 행정의 속성인 관료화를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행정이 관료화한다 해도 문화행정마저 덩달아 관료화한다면, 바로 그 문화행정의 대상인 문화는 어찌 되겠는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관료화를 스스로 떨쳐내야 하는 숙명적 존재가 문화행정임에도 우리는 오히려 더 관료화한 문화행정을 목도하곤 한다.

이러한 문화행정의 패러독스는 문화행정가를 최고 전문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렇다. 문화행정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를 제대로 꽃피우기 위해서는 문화행정부터 문화화해야 하며, 문화행정기관이 문화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민간 기업과 공공 조직을 불문하고 다 그렇지만, 특히 문화행정기관의 조직문화는 그래서 중요하다.

미국 코네티컷대학 경영학과의 하비 쇼 교수가 문화의 고갱이인 예술과 그 행정을 두고 한 말을 끝으로 마무리한다. "예술행정은 본디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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