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 부장

지금 세상 사람들은 온통 길에 몰두하고 있다. 꽃피는 춘삼월과 녹음 가득한 여름을 지나 오방색 단풍물결로 가득한 가을, 그리고 북풍한설의 겨울까지 한반도는 365일 길에 몰입돼 있다. 제주도 올레길에서부터 시작한 길 찾기 바이러스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를 지나 서울과 강원도 북단까지 산길과 들길, 시골길과 도시의 뒷골목, 그리고 바다의 길과 호수의 길 등 수많은 길들이 쏟아지고 있다.

때마침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길이 탄생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한강을 따라 천년의 역사를, 금강을 따라 백제의 아름다움을, 낙동강을 따라 찬란한 전통문화를, 영산강을 따라 남도의 맛과 멋을 즐기란다. 자연과 인간, 문화와 문명이 하나 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강줄기에서 나긋한 걸음을 좆으며 새로운 꿈을 심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최근 청주시가 길 찾기 대열에 합류했다. 자랑할만한 골목길 하나 없고, 온 가족이 오붓한 소풍을 즐길 수 있는 길 하나 없어 고심했는데 우암산을 중심으로 멋스러운 길을 만들겠다고 하니 반기고 볼 일이다. 그런데 우암산에 길을 조성하는 문제를 놓고 말들이 많다.

길의 명칭에서부터 자연과 생태보전의 문제, 인도와 차도의 문제, 문화와 복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논란은 먹물 번지듯 확산되고 있다. 혹여 없는 길을 억지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남들 하는 사업 따라하다 누더기 길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따지고 보면 그 논란의 중심은 하나다. 사람이 행복한 길을 만들자는 것이다.

필자는 우암산길이 참으로 맑고 향기로운 길, 청주만의 문화DNA를 담은 길, 청주정신이 살아있는 생명의 길이 되기를 갈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계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수렴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암산 주변의 생태와 공간, 역사와 문화, 주거환경과 도로 등을 세심하게 분석한 뒤 약점을 강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옛 연초제조창, 청주대, 수암골, 국립청주박물관을 비롯한 문화공간 등 우수한 자원을 갖고 있으며 시내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또 봄에는 만화방창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으로 가득하며 가을에는 오방색 단풍의 물결이 오가는 사람 시심에 젖게 하고 겨울에는 하얀 눈꽃으로 순결함을 자랑하지 않던가.

이곳에 생태섬과 생태숲을 조성하고 골목길 정원과 돌담, 계곡과 작은 연못, 먹바위 등 아기자기한 생명의 이야기 터를 만들면 좋겠다. 갤러리와 미술관, 북카페와 공방, 한옥마을과 조각공원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골의 산길이나 들길이 아니라 도심 속의 길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 문화, 생태가 조화로운 청주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곳곳에 테마박물관을 만들고, 화가들이 둥지를 틀 수 있는 갤러리를 조성하며, 도자 목칠 금속 유리 등 미니공방을 통해 오감이 즐거운 체험을 함께하고, 한옥과 돌담길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며, 연못과 계곡물에 발을 담근 뒤 동심의 노래를 불러보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의 세계 속으로 초대받는 황홀경을 꿈꿔본다.

연초제조창, 수암골, 청주대 캠퍼스 등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와 행사를 연중 개최해 문화로 물결치고 자연과 생태가 충만한 곳이어야 한다. 청주만의 맛과 멋으로 추억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인근의 명암지를 세계적인 녹색 예술인마을로 가꾸고 산성옛길과 연계시켜 문화상품화 한다면 더욱 좋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고 즐기며, 회색도시의 삶에 쉼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청주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 문화상품이기를 갈망한다. 깊고 느리게, 낮고 두텁게 가야 한다. 꽃처럼, 나비처럼, 햇살처럼, 바람처럼 맑고 향기로운 청주정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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