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 부장

가을의 끝자락을 부둥켜 안고 충남 예산군 광시면의 예당저수지 인근에 자리 잡은 충남문학관으로 마실 다녀왔다. 이곳에는 박목월·김동리·서정주 같은 우리에게 주옥같은 시를 선사했던 시인에서부터 조정래·조병화·전상국·이어령 등 현대 한국문학사에 크고 작은 업적을 남긴 분들의 도장과 관련한 자료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문학을 이끌어 온 문인들의 열정과 삶의 흔적을 도장이라는 작은 아이콘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게다가 수십 개의 개성미 넘치는 시비가 있는 정원은 생태와 시노래로 물결치게 하였으니 번잡한 일상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단비 같은 곳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문학관이 많다.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은 그의 대표작인 대하소설 <혼불>을 중심으로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최명희 글씨체를 따라 화선지에 글을 쓰거나, 다가올 미래의 꿈과 다짐을 편지에 써서 맡기면 문학관이 1년 뒤에 편지 쓴 이에게 보내주는 '나에게 쓰는 편지'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주는 전통의 향연 속에 생명의 불꽃을 남김없이 태워 필생의 역작을 완성한,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본 같은 삶과 문학정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고창의 미당시문학관은 서정주 시인의 유품 1만5천여 점이 소장돼 있다. 인근에 대규모 국화밭이 조성돼 있어 매년 가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꽃향기에 취하고 주옥같은 시를 읊을 수 있어 좋다. 김동리와 박목월을 함께 기리는 동리·목월문학관은 흉상과 유품, 사진자료와 문학자료를 전시하고 집필실을 재현해 놓고 있다.

강원도에는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 봉평의 이효석문학관, 춘천의 김유정문학촌, 영월의 김삿갓문학관 등 일반 대중들에게 친숙한 문학관이 많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고향인 원주시 단구동 옛 집터에 세워진 박경리문학공원은 생가를 재현해 놓고 <토지>의 배경공간을 본떠 만든 평사리 마당, 용두레벌 등을 호젓하게 노닐며 어머니 같은 문학의 품속을 여행할 수 있다.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의 가을은 새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다.

그 속을 구름과 햇살과 바람과 함께 따라 들어가면 이효석문학관이 있는데 말 그대로 "흐드러진 소금꽃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축제와 인근의 월정사 대나무 숲길 여행을 함께하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동백꽃> <봄봄>등 토속적이고 서정성 짙은 단편소설을 남긴 김유정을 기리기 위한 문학관은 전통한옥으로 빚은 김유정역驛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문학 작가의 삶과 이야기를 만나고 돌담길과 호수와 연못과 숲속의 악동들을 만날 수 있으니 춘천의 멋과 맛과 향을 함께할 수 있다.

이밖에도 옥천에 가면 섬세하고 미려한 시노래 <향수>의 주인공 정지용문학관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생가 앞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주변의 골목길 풍경이 한유로우며 낮고 느린 논두렁 밭두렁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숲과 계곡이 쏟아진다.

자글자글 주름으로 가득한 구릿빛 농부들과 새참 나르는 아낙네의 풍경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이처럼 문학관은 작가의 치열한 삶과 문학세계를 온 몸으로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다. 애틋하거나 가슴 시리고 아픈 이야기도 만날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와 함께 스토리텔링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와함께 그 지역의 소슬한 역사와 생명의 숲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문학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하니 우리지역에도 오달지고 마뜩한 문학관 하나 있으면 좋겠다. 작고 문인과 현재 진행형 예술인의 아름다운 글과 춤과 음악이 조화롭고, 생태와 역사와 문학이 불꽃 튀며, 작가와 주민과 관광객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면 좋겠다.

번잡한 곳이 아니면 더 좋겠다.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담고 새로운 문화브랜드로 명성을 날리며 이를 통해 문화도시, 문화복지를 일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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