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 기획홍보 부장

2011년 신묘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시간에는 본래 구분이 없는데, 인간에 의해 쪼개진 12개의 조각 맨 끝자락에 서면 왠지 심란하고 사색에 젖는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간의 노정이 무익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때로는 이럴 순 없다며 외치고 발버둥 쳐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마음의 상처만 깊어갈 뿐이다.

이유 없이 열병에 시달리고 걸신들린 것처럼 두리번거려도 그 무엇 하나, 그 누구 하나 내게 손 내밀지 않는다. 아프고, 외롭고, 슬프고, 어둡고, 가난함에 몸부림쳐 보지만 사회적 자아만이 하얗고 냉랭할 뿐이다. 그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러니 아프다고 눈물 흘리지 마라. 아픔을 겪지 않고 이 땅에 태어난 생명이 있을까. 얼었던 대지위에 초록 새싹이 돋고 있다. 아파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눈물 한 번 보이지 않고 하늘 향해 솟아오르고 꽃을 피우지 않던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자잘한 아픔을 겪고 견디며 이겨내는 과정이니 아플수록 더욱 단단하고 알곡진 열매로 남아야 한다.

슬프다고 얼굴 찌푸리지 마라. 사랑해서 슬프고, 헤어져서 슬프고, 다시 만나 정을 나누면서 가슴 시리도록 슬픈 게 인생이 아니던가.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며 햇살 부서지는 태양 아래서도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지 않았던가.

슬프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슬프다고 눈물 흘리고 얼굴 찌푸리지 마라. 때로는 눈물 흘리는 것도 사치다. 그 시간에 자신만의 내밀하고 강인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춥다고, 외롭다고 움츠리지 마라. 외로움 없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북풍한설을 딛고 일어선 복수초는 기나긴 시간을 추위와 고독을 품으며 일어서지 않았던가. 차면 찰수록 정신은 더욱 맑고 향기로운 법, 그러니 추울수록, 외로울수록 자신만의 DNA를 만들어야 한다.

어둡다고 고민하지 마라.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다. 어두움 없는 밝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햇살과 바람은 단 한 번도 누구의 편에 서는 법이 없으니 내가 있는 이 자리를 어둡고 누추하다고 생각 말라. 맨홀뚜껑을 비집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습하고 누추한 곳에서 희망의 씨앗을 품어보자.

부족하다고 아쉬워 마라. 어차피 인생이라는 그릇은 채워도 채워도 부족한 법. 나만의 그릇에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나만의 바다와 나만의 숲을 만들면 그것이 인생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꽉 찬 인생보다는 부족하고 헐렁하더라도 오달지고 마뜩한 나만의 색감을 만들면 좋겠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순간 행복이 밀려오지 않던가.

가난하다고 부끄러워 마라.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법. 맨발이면 또 어떠한가. 꿈을 꾸고 꿈을 일구며 꿈이 영그는 그날까지 달려가면 되고 텅 빈 충만을 노래하면 되지 않는가. 아픔 없이 피는 꽃,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어디 있으랴.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며 사랑하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꽃봉우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어두운 길, 이따금씩 나의 존재가 작고 왜소해 보일지라도 이 모든 것을 품을 때 희망의 뱃고동이 울리지 않을까. 어차피 삶이란 부족하고 헐렁한 길을 하나 둘 채워가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 지금 창밖에는 찬바람이 거세고 눈꽃송이 내 마음 속으로 밀려오고 있다. 그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한 줌의 불쏘시개가 돼 주면 또 어떠한가.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되고, 길을 걷다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면 되고, 외로우면 여럿이 함께 어깨동무 하면 되고, 어둠이 밀려올 때는 촛불 하나 켜면 되지 않던가.

그 때부터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고, 새로운 희망이 되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해야 한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아름다움으로 물결치는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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