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최우식 '사람&사람' 변호사

◆ 형사법정 풍경1

의뢰인 형사재판의 선고가 있는 날이다. 선고가 있는 날은 대개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하지 않는다. 출석해도 변호사가 할 일이 없고, 불리하게 선고되면 변호사에게 난리치는 의뢰인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사건은 나가서 선고를 듣고 싶어졌다.

보험사기 사건인데 공범이 12명이고 언론에도 보도돼 불리했다. 필자가 맡은 의뢰인은 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됐다. 나머지 공범들은 모두 자백을 했으나 필자의 의뢰인은 부인했기에 처음에는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수사기록을 보니 아무래도 자백을 하고 선처를 구하는 게 나아 보였다. 의뢰인을 설득한 끝에 간신히 자백을 하기로 하고 집행유예의 선처를 바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피해자와 접촉해 피해보상을 하고 합의서를 제출했다. 피해금액도 3천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의뢰인의 전과가 전혀 없었다. 문제는 죄질이었다. 주범이기 때문이다.

선고가 시작됐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하고, 전과가 없으며…" 먼저 유리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불길했다. 나중에는 불리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역시 "그러나 주범으로서… 죄질이 불량하고… 사회적 경종을…" 징역 1년이었다. 판사가 죄질을 안좋게 본 모양이다. 실형을 선고해도 뭐라 할 수 없는 합당한 판결이었다. 다만 조금의 선처를 바랬건만… 복도에서 피고인의 지인을 만났다. 필자가 할 것은 다 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뭘 빼먹었는지, 내가 능력이 없는 건지 의뢰인들의 눈초리에서 그런 것이 읽힌다. 내가 죄지은 기분이다. 항소하면 과연 집행유예가 나올 것인가. 요즘은 재판이 과거보다 더 엄격해져서 무조건 항소한다고 1심보다 유리하게 나오리란 보장은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그래도 의뢰인에게 "억울하시면 항소하라"고 했다. "재벌놈들은 몇백억씩 해먹어도 집행유예로 잘도 풀어주더만, 우리같은 서민들은 겨우 3천만원 해먹어도 실형이고…" 의뢰인의 푸념을 뒤로 하고 법원을 나왔다. 저녁에 술이나 한 잔 해야겠다.

◆ 형사법정 풍경2

위의 선고를 듣고 법원을 나서는데 필자가 1심을 맡았던 사람을 만났다. 회사에서 부하직원의 업무상 횡령에 연루된 사건인데, 괜히 부하직원 도와주려다 공범으로 엮인 것으로 선처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횡령금액이 3억5천만원에 달해 조금 불리했다. 왜냐면 의뢰인은 금융기관 직원이기 때문에 벌금형이 꼭 나와야 직장을 유지하기 때문. 그래서 변론방향은 공동정범이 아닌 방조범으로, 그리고 피해자와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로 정하고 진행했으나, 결국은 공동정범으로 인정됐고, 피해자와의 합의서는 회사, 정확히 말하면 이사장의 거부로 인해 제출하지 못했다.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항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후 사건검색을 하다가 필자 이외에 다른 변호사가 선임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알고 보니 법원장 출신의 서울 변호사였다. 의뢰인이 정말 절실했나 보다. 필자도 그런 상황이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의뢰인은 필자에게 미안해서 그런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사임을 했다. 어차피 1심에서 할 건 다 했고, 2심은 그저 법원에 읍소하는 것과 합의서를 제출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보니 첫 눈에 벌금형이 나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웃는 얼굴로 반갑게 악수를 청했기 때문이다. 물어보니 역시 벌금형이었다. 이사장에게 간신히 합의서를 받아냈단다. 다행이었다. 그리고 합당한 판결이었다. 필자가 봐도 그 사람은 실형이나 집행유예로 직장을 잃기에는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악수를 하고 헤어지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씁쓸함이 스쳐갔다. 필자가 맡아서 했을 때는 그렇게 합의서를 받아오라고 얘기했건만 그렇지 않더니. 또 만약 필자가 맡았을 때 합의서를 제출했다면 벌금형이 나왔을까? 갑자기 작아지고 소심해진다. 이래저래 오늘은 술 한 잔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junebe21@hanmail.net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