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변호사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

변호사법 제1조 제1항에 있는 변호사의 거창한 사명이다. 사법시험을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를 하면서 누구나 그런 사명을 가슴에 담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런데 변호사는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업종이 서비스업이다.

처음엔 좀 낯설었다. 직전의 사법연수원생은 공무원 5급 신분이다.

공무원 하다가 정년퇴임해 막 장사를 하는 사람의 심정이랄까. 그러나 한두 달 지나면 식당에서 음식을 파는 것이나 법률 지식을 파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변호사도 서비스업자 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갑과 을은 각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재혼을 했는데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고 10년을 살았는데 을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갑은 여러번 헤어졌다 합쳤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지난해 봄에 을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러자 을의 자식들이 갑을 상대로 갑이 가진 모든 재산은 을이 갑에게 명의신탁을 한 것이므로 돌려달라는 청구를 했고, 이에 갑이 필자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갑은 집과 가게 전세보증금 등의 자금출처에 대한 은행 내역이 있었다. 그러나 을은 사망했고 그 자식들은 그 내역을 모르기에 명의신탁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었다. 변호사의 말만 믿고 막연히 청구한 것 같았다.

그런데 갑의 말을 들어보니 갑의 재산은 을과 공동 형성한 재산이어서 을에게 적어도 1/2은 권리가 있었다. 갑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런데 을의 자식들이 하는 짓이 괘씸해서 한 푼도 못준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원고는 명의신탁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선고를 1주일 남겨 놓은 어느 날, 재판부에서 전화가 왔다. 원고가 명의신탁을 전혀 입증하지 못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갑과 을이 합심해 형성한 재산인 것 같은데 피고를 설득해 어느 정도 주는 것으로 화해권고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서비스업자이므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의뢰인의 100% 승소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변호사에게는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정의는 갑의 재산은 을과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이므로 을에게도 그 반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재산권이므로 그 자식들인 원고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의 재판이 항상 정의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이 사건의 경우 법원은 원고의 주장이 입증이 되지 않았으므로 기각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원고가 아버지의 재산을 찾아올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게 된다.

그 점을 필자도, 판사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필자가 먼저 1/2 지분을 주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사건은 조정을 통하면 쉽게 해결 될 수도 있는 사안인데 상대방 변호사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많은 고민을 했다. 판사가 전화를 해온 것 때문은 아니었다. 그거야 의뢰인이 안된다고 하면 끝나는 문제다. 변호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근본적인 문제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무시해야 하는지, 아니면 진실 혹은 정의를 위해 의뢰인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렇다면 의뢰인과의 계약위반은 아닌지… 고민 끝에 의뢰인에게 전화를 했다. "소송의 승패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또 원고도 사정이 좀 어려운 것 같고, 그리고 당신 재산 중 반은 솔직히 부부가 합심해서 번 것이 아니냐, 그러니 6대4로 해서 어느정도 주면 어떻겠느냐"고... 의뢰인은 "변호사님이 그러시니 그렇게 하자"고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판사에게 전화를 해 6대4로 하겠다고 했다. 나름 변호사로서의 초심을 되새긴 것 같고 정의를 실천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렇지만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한 걸까? 괜한 오지랖일까? 평생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운명인 것 같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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