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변호사

사건에 따라 또는 재판 결과에 따라 변호사는 능력 있고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능력도 없으면서 돈만 밝히는 나쁜 변호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처음 변호사 배지를 달았을 때는 모든 사건에서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결과가 안 좋게 나와도 나름의 수고를 의뢰인이 알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니 사람들은 순진하지 않다는 것을 얼마 안 지나 깨달았다. 간단했다. 이기면 좋은 변호사이고 지면 나쁜 변호사였다.

"어떻게 변호사가 그런 사람을 변호해요?"

성폭행으로 상대방을 고소했다가 검찰에서 무혐의로 결정되자 한 의뢰인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상대방의 변호사를 향해 한 말이다.

당시 의뢰인은 상대방과 성폭행뿐만 아니라 상해 명예훼손 등 여러 개의 사건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상대방은 서울 로펌의 변호사에게 모든 사건을 위임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나쁜 놈을 위해 변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고,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고 막 몰아붙이는데... 어떻게 변호사가 그럴 수가 있어요? 얼굴도 못 생겨 가지고... 변호사는 정의로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떨결에 필자가 정의의 변호사가 되었다. 웃고 있었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만약 상대방의 변호인이 되었다면 나도 그런 욕을 먹었을 것이다. 아니 이 소송의 상대방에게 필자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변호사도 상황에 따라 '나쁜' 변호사가 되기도 한다.

몇 달 전 한 남성이 찾아와 자신이 내연녀의 어린 딸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으로 기소됐는데, 자기는 절대 그런 적이 없다면서 무척 억울해하며 진실을 밝혀달라고 했다. 과도한 스킨십은 좀 있었지만 절대 성추행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 성범죄에 대해 형량이 엄격해졌고 피해자가 어린 경우 그 진술이 쉽게 증거로 인정되는 추세여서 뒤집기가 어려운데다가 이런 사건의 변호인은 반드시 악역이다.

솔직히 맡기가 좀 껄끄러웠다.

그러나 변호사는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다는 이유로 사건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사명이 있다. 의뢰인의 말을 진실이라 믿고 맡아서 변론을 해나갔다.

그러나 사건은 예상했듯이 의뢰인에게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담당판사도 은연중 유죄의 심증을 비추었다.

그래서 중간에 의뢰인에게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과연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자백을 하자고 했지만 의뢰인은 정말 억울하다고만 했다.

그래서 끝까지 유죄를 다투었다. 그러나 결국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고 또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중형인 9년이 선고됐다. 그러자 의뢰인은 그렇게 중형이 나올 것을 알면서도 왜 적극적으로 자기에게 자백을 하도록 시키지 않았냐면서 수임료를 돌려달라며 태도를 바꿨다. 결국 예상대로 필자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의뢰인에게도 능력 없고 나쁜 변호사가 되었다.

변호사는 사건을 시작하면서 일단 반은 나쁜 '놈'이 된다.

거의 모든 사건에는 상대방이 있어 그 사람으로부터 욕을 먹고 시작한다. 그러다 재판에서 지면 의뢰인한테까지도 나쁜 놈이 된다. 보통 변호사라면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으며 쉬운 사건을 선호한다. 어렵지 않게 승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변호사는 높은 승소율을 광고하기도 한다.

그런 유혹은 변호사에게 달콤하다. 솔직히 필자도 그런 사건은 피하고 싶다. 그렇지만 "가진 것도 없고, 재판에서 져도 뭐라고 안 할테니 변호사님이 좀 맡아 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욕먹을 것을 알면서도 사건을 맡기도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지만, 욕 먹는 것도 즐겨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고민이 깊어진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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