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평] 강석범 청주미술협회 부회장

지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교직에 들어선지 벌써 23년째다. 마침 젊은 선생님들 중 조그만 케익하나를 들고 온 선생님과 사무실에 있던 몇몇 선생님들이 소파에 둘러앉아 이런 저런 '스승의 날'에 얽힌 사연들은 주고 받았다. 문득 초임시절인 20여 년 전 '스승의 날'이 떠올라 내가 말문을 열었다. 사연은 이렇다.

초임시절 내 책상 정면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수학선생님이 계셨다. 매일 책상을 마주보고 얘기하다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럼없는 대화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마침 같은 성씨여서 어딘 선가 '강 선생님~'하고 부르면 둘이 동시에 한곳을 쳐다보기도 했다. 수학선생님은 평소에도 가끔씩 삐걱거리는 의자를 뒤로 젖히면서 "강 선생! 참 좋을 때 다. 나도 그 시절이 있었다" 하시곤 했다. 그 때 내 나이 20대 중반을 조금 넘어섰을 시절이니 수학선생님이 보시기에 참 젊은 청년이었으리라.

교직에 들어 첫 번째 맞는 스승의 날! 아침부터 금강줄기에 위치한 자그만 시골중학교 교실이 북적인다. 저마다 편지며, 조그만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한 아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선생님을 교무실에서 확인하며 나름 큰 용기를 내어 들어온다. 한 놈 두 놈 내 앞에서 얼쩡거리다 책상위에 무언가를 하나씩 내어놓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색하기도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주변 선생님들은 장난기어린 말투로 연신 "와~ 강 선생 역시 인기 최고구만?"을 남발하신다.

내가 어색해 하는 사이 교무실은 또 다시 조용해졌고, 아이들의 발걸음이 수습 될 즈음, 수북이 쌓인 선물과 편지들 너머로 텅 빈 수학선생님의 책상이 보였다. 마침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수학선생님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며 "미안해 할 것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하시곤 웃으며 교실로 향하셨다.

그 뒤 세월이 한참 지나 몇 년 전 청주시내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보통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예·체능계열 교사들은 담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담임이 없었고 더군다나 대학 입시에 따른 중요 교과목 교사가 아니므로 내 이름조차 모르는 학생이 훨씬 많았다.

초임 때처럼 '스승의 날'을 맞아 교무실은 아침부터 북적 거렸다. 하나 둘 씩 들어와 담임선생님께 인사하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교과담당선생님께 인사하느라 분주하다.

수업시작 5분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각자의 교실로 돌아간다. 교무실은 다시 평온을 찾는다. 꽃다발과 각종 사연들을 확인하느라 선생님들의 입가에 환한미소가 번진다. 마침 내 앞자리 1학년 담임선생님의 책상이 꽃으로 가득하다. 나를 보고 멋쩍어하는 1학년 담임선생님이 미안할까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미술실로 내려갔다.

교무실 계단을 내려오면서 20여 년 전의 교무실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1층 미술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상쾌하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이건 세월의 흐름일 뿐이다. 수학선생님이 생각났다.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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