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변호사

이 땅의 딸을 둔 부모를 대신해서 먼저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그 기나긴 어둠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너를 처음 성폭력피해자와 그 법률조력인(국선 변호인)으로서 만났을 때 너의 큰 눈망울, 어딘가 드리워진 그늘, 그리고 겉으로 강한 척 하지만 그럴수록 속은 여리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단다. 그리고 알게 된 너의 실화.

처음에 난 궁금했어. 왜 그 상황에서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었지만 부모님이 계셨고, 곁에는 외할머니, 학교에는 선생님, 경찰아저씨도 있었는데 왜 그 녀석한테 그렇게 당하고만 있었는지, 바보같이…. 그러나 너의 말을 듣고 나선 이해할 수 있었단다. "부모님은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저 때문에 속상해 하실까봐. 외할머니는 나이가 팔순이셔서 충격 받으실까봐요. 선생님은 서먹서먹해서 좀 그랬어요." 하긴 어른들도 깡패들한테 협박 받고 그러면 경찰에 잘 신고도 못해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자살하기도 하고 그러거든. 어른들도 하기 힘든 것을 어린 너에게 기대하는 게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몇 달 전 학교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대구의 중학생이 부모,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보복이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보고 너의 그 심정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단다.

니가 그 녀석에게 보냈다는 그 '밝은 표정'의 사진을 보고 그게 성폭행당한 사람의 행동이냐는 식의 증인 신문에 "그건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런 거라구요. 그렇게 안하면 걔가 동영상 뿌린다고 했단 말이에요."라고 말하고 분에 받히는지 울먹이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구나. 그래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고, 너무 슬프면 헛웃음이 나듯이 사진 속의 너의 해맑은 눈웃음이 그 지옥에서 살아 나오기 위한 슬픈 눈망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구나.

정은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너를 그렇게 방치한 부모, 무기력했던 외할머니, 서먹서먹했던 학교 선생님, 나아가 경찰, 검사, 판사, 변호사 등 그 잘난 사람 누구하나 너한테 도움이 되질 못했구나. 그 어둠 속에서 오로지 13살 너 혼자 어떻게든 살아나오려고 그 변태적 행위를 참아가며 억지 웃음을 지어야 했던 그 심정을 모르는 철없는 어른들이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며칠 전 대구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자살하기 2시간 전 옥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힘들어하는 사진속의 모습을 보며 그 순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면서 문득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단다.

"그래 살아줘서 고맙다. 널 지켜주지 못했던 이 땅의 모든 어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서 고맙고, 그런 어둠속에서 끝까지 너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하구나"

정은아! 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아픔을 간직하고 살고 있단다. 안 그런 척 하지만, 그게 인생이야. 그러니 너만 특별한 것이 아니니까 그까짓 거 훌훌 털어버리고 남은 너의 인생 멋지게 사는 거야. 그리고 이 아저씨는 정은이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는 안할게. 나도 뒤늦게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서 나이 서른에 대학에 들어갔거든. 공부는 적당히 해도 돼. 대신 책 많이 읽고, 여행 자주 다니고, 알바해서 직접 돈 벌어보기도 해보고. 하여간 교과서 밖에서 많은 체험을 해봐. 나중에 큰 재산이 될거야.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는 거. 난 그게 더 용기있는 거라고 봐. 앞으로 힘들면 그냥 힘들다고 얘기하길 바래. 힘내라 정은아! (피해자 이름은 가명임)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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