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변호사

미국시인 사무엘 울만(1840~1924)은 청춘(Youth)이라는 시에서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잃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 the soul.)라고 읊었다.

10월초에도 마치 초겨울처럼 쌀쌀한 퇴근길에 문득 나에게 묻고 싶어졌다. 내 열정은 아직 살아 있나?

지난해 2월 변호사일을 시작할 때는 열정 그 자체였다. 평일은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주말에도 반나절은 일을 했다. 그래도 당시는 일이 힘들어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약자를 보호하자는 초심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의뢰인의 사건을 내 일처럼 여기며 하는 것은 좋지만, 사건결과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다 '한방에 훅'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무실의 전임 변호사가 40대 중반에 과로사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변호사를 1명 채용했다. 일을 분담하니 좀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더 큰 스트레스는 일이 아닌 '의뢰인'이었다. 상담만 받고 그냥 가는 사람,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고 해 수임료를 깎아주었더니 그 나머지를 떼어먹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에 속한다. 제일 스트레스는 재판에 지면 무조건 변호사 탓이라며 책임지라는 사람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내연녀 딸을 성추행해 기소된 사건인데, 조금 의심스러워서 그냥 자백하고 선처를 구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지만 결단코 자기는 결백하다고 주장하기에 그렇게 믿고 무죄를 다퉜지만, 오히려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해 1심에서 9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그러자 의뢰인은 왜 자기를 자백시키지 않았느냐며 수임료를 돌려달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어의가 없었지만 결국 수임료의 반을 돌려주었다.

그 후로 변호사로서의 순수한 열정은 급격히 식어갔다. 그냥 '일'을 '일'로서 대했다. 변호사란 직업은 호구지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게 '사건을 객관화'하고 나니 스트레스는 줄어들었다.

그런데 왠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문득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이 튀어나왔다. 아! 단순히 먹고 살려고 변호사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래서 올 해 초부터 충북참여연대 사회인권위에 추천으로 가입해 활동하게 됐다. 여러 가지의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었는데, 그중 '택시도급제' 문제는 간담회, 기자회견 등 적극적으로 활동해 청주시로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금은 '도가니'로 대표되는 복지시설의 족벌경영, 강제노역 등의 실태와 그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또 청주지방검찰청의 법률조력인으로 선정되어 아동·청소년 성폭행 피해자에 대해 상담하고 의견서를 제출해 법정에 출석해 피해자의 어려움이나 가해자 강력처벌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중 사촌오빠한테 40여차례 성폭행을 당한 여중생의 사례는 너무 안타까웠다. 지금 맡은 사건 중 친부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것이 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피해자가 어린 나이에 가출하고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 밑에서 자랄 수 밖에 없어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는 날에는 이유없이 때리기도 해 하루 하루가 지옥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컥 하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어떻게 열정을 갖고 살 것인가? 과연 나는 돈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이다. 어째 평생 고민만 하다 말 것 같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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