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변호사

최근에 여러 가지 성범죄 근절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그 중에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가 부각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 해 9월 한 방송에 출연해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양형 감각이 낮게 형성된 것은 우리 법이 성폭행을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개인 의견임을 전제해 친고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미 국회에서도 성폭행 근절을 위해 친고죄 조항 폐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성범죄 대책특위 구성에 합의하고 모든 연령의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을 삭제키로 했다고 한다.

친고죄란 피해자, 법정대리인 등 일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가 가능한 죄로서 대표적으로 강간죄이다. 현재 성폭력 범죄 중 아동·청소년이나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 범죄는 모두 비친고죄이고, 친고죄로 남아있는 것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간, 강제추행 등이다. 원래 친고죄는 원래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지만, 피해자가 신분 노출을 꺼리고 또 가해자의 보복위협이 두려워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거나 피해자와의 금전적인 합의를 통해 오히려 '범죄를 덮어주는' 부작용이 더 컸다. 또 합의할 경우에도 합의금을 노린 '꽃뱀' 취급받기도 한다. 게다가 피해자는 1년 안에 고소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

무엇보다 친고죄는 고소를 전후하여 '2차 피해'가 심각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상담한 총 3천739건의 성폭력 사건 가운데 친고죄 때문에 2차 피해를 입은 512건(중복 포함)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 쪽에 의한 피해'를 입은 경우가 27.2%(139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나 검사 등 '수사·재판 기관에 의한 피해'가 13.3%(68건), 남편이나 애인 등 '피해자 지인에 의한 피해'는 5.4%(28건)에 이르렀다.

'가해자 쪽에 의한 피해' 가운데는 '합의 종용'(43.2%, 60건)이 가장 많았다. ▶집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합의를 요구해 이웃에 피해 사실이 드러남 ▶종교인인 가해자의 신도들이 찾아와 합의를 종용 ▶가정파탄을 이유로 동정을 호소 ▶가해자가 가족부양을 해야 한다며 봐달라고 괴롭힘 등의 내용이 접수됐다. 피해자를 협박해 고소를 막은 사례도 18.7%(26건)나 됐다.

'수사·재판 기관에 의한 피해' 68건 가운데는 '합의 권유 및 종용'이 31건(45.6%)으로 가장 많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지나 활동가는 "수사기관이 피해자에게 '왜 도망가지 않았나', '잘못 고발하면 무고죄다', '합의한 것 아니냐'고 묻는 사례가 많은데, 이는 성범죄를 범죄가 아닌 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 벌어지는 일"이라며 "친고죄는 이런 통념을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특히 10명 가운데 1명 이상(12.6%, 65건)이 고소기간을 넘기는 바람에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사건의 85% 이상이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특성에 비추어 고소를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 견줘 고소기간 1년이 너무 짧은 탓이다.

필자가 맡은 여러 성폭력 사건에서도 자신의 신상정보에 대한 노출 때문에 고소를 취소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차라리 합의금을 받고 끝내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당장의 친고죄 폐지가 과연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멀리 보면 결국 친고죄는 폐지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전에 수사 담당자의 피해자 신상정보에 대한 기밀유지 및 피해자 안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우리사회의 성폭력 피해자를 보는 편견에 대한 지속적인 계몽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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