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최우식 사람&사람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입증책임이란 소송법상의 증거의무로서 의무자가 법원을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 입게 되는 소송상의 불이익을 말한다. 즉 법원이 일정한 법률관계의 존부를 판단함에 있어 필요한 사실의 존부를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느 한쪽의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가정하여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가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한쪽이 입게 되는 패소에 대한 위험이다.

입증책임을 어느 당사자에게 부담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일을 입증책임의 분배 라고 한다. 입증책임의 분배는 공평의 요구, 경험상의 개연성, 그 권리의 실질적 목적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정해지는데, 일반적으로 권리관계의 발생·변경·소멸 등의 법률효과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것을 직접 규정하는 법조의 요건사실의 입증책임을 진다.

그러나 그러한 법조의 요건사실 중 단서나 예외조항에 대하여서는, 그 규정에 의한 효과를 다투는 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쉽게 말하면 자기가 주장하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빌려준 돈을 받으려는 원고는 돈을 빌려주게 된 약정과 실제로 돈이 건너간 사실과 그 기한이 도달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그러면 이제는 피고가 그 돈을 갚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에서 그런 약정을 그냥 '말'로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설 하도급계약에서는 거의 구두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공사완료 후 그 약정에 관련해 분쟁이 빈번하다.

필자가 맡은 최근의 한 사건의 경우도 의뢰인이 건설회사와 구두로 계약을 체결했는데 현장소장으로서 책임지고 공사를 완료하되 보수는 성과급으로 받기로 했다고 한다.

또 한 경우는 도급업자와 동업식으로 이윤을 5대5로 나누기로 했다고 했다. 공사를 완료한 것은 분명하고 그 약정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핵심인데 계약서는 없고 어쩔 수 없이 공사관계자의 확인서로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위 사건과 관련된 가압류 사건에서 '현금공탁'이 나왔다. 신청사건에서는 입증보다 가벼운 증명인 '소명'이면 되는데 그 소명이 덜 됐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또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진 분쟁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에 딸이 아버지를 상대로 강박에 의한 증여계약의 취소로서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사건이 있었다.

딸의 남자친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 아버지가 딸과의 결혼을 반대했고, 딸이 임신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딸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서 낙태를 강요했고, 결국 견디다 못한 딸은 아버지의 요구대로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값'으로서 3천만원을 지급한 후에야 집을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아버지는 그런 강요는 없었다고 말한다. 난감한 일이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나머지 가족인 어머니와 언니도 모두 아버지 편이었다. 그나마 남자친구가 유일한 증거였으나 '원고편'이라는 이유로 증거신청이 기각당했고 결국 이 사건은 입증도 못해보고 1번의 재판으로 종결됐다.

증거가 완비되어 있으면 변호사는 물론이고 판사도 편하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런데 증거가 없거나, 있지만 같은 편 증거인 경우에도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진실에 접근하기도 한다. 또 그런 과정에서 소송당사자간에 합의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심정으로 끈기있게 접근하면 좋은데, 현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개 의뢰인들은 그렇게 입증을 못해서 소송에서 지고 나면 '대체 그런 법이 어딨냐'고 한탄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변호사들은 착잡하다. 판사도 '신'이 아닌 이상 관련 증거로만 판단할 뿐이다.

'진실과 그 입증의 문제'는 법조인들이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이다. 다만 그 확률을 높여갈 뿐이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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