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대표변호사

계열사가 출자한 펀드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최태원 SK㈜ 회장의 변호인(변호사)에게 재판장이 증인에 대한 위증 교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4부 심리로 열린 항소심 여섯번째 공판에서 재판장인 문용선 부장판사는 최 회장 변호인에게 "혹시라도 증인에게 위증하게끔 하지 않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최태원 회장에 대한 횡령 및 배임에 대한 1심 변호는 우리나라 변호사 업계 1위인 '김앤장'이 맡았는데, '김앤장'은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서 최 회장의 무죄를 주장했고 또 설사 유죄가 나오더라도 '그룹의 경영공백 우려' 등의 여론몰이로 과거처럼 집행유예가 나오도록 하는 전략으로 삼았다.

그런데 결과는 징역 4년에 법정구속이었다. 집행유예는 고사하고 재벌한테 법정구속이라니 최 회장이 충격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항소심에서는 2위 로펌인 '태평양'으로 변호인을 바꾸었고, 태평양에서는 더 이상 재벌공식(징역3년, 집행유예5년)이 통하지 않는 현실을 간파해 차라리 '굽신 모드'로 하여 인정할 건 인정해서 형이라도 줄이고 정상참작으로 집행유예를 바라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 같다.

그래서 태평양의 변호사들이 1심에서 일부 증인들을 설득해 증언을 번복시키자 그에 대해 재판부가 지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변호사 단체인 '김앤장'이 물을 먹었다.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한화의 김승연 회장도 2심에서 '태평양'을 선임했다고 하는데, '태평양'이 두 재벌회장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이끌어낸다면 앞으로 재벌의 형사사건은 '태평양'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

씁쓸하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건 이미 오래, 이젠 '진실'마저 '시장'으로 넘어간 것일까? 재벌들은 기소되면 거대 로펌을 선임하고, 거대 로펌에서는 해당 판사의 인맥을 총동원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진실'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재벌공식이다.

이와 대비, 필자가 맡은 사건 중 하나가 생각난다. 보험사기로 기소된 피고인인데 피해액 3천만원 중 2천만원을 변제해 피해자 한 곳 빼고 모두 합의했고 동종 전과가 없어서 내심 집행유예를 기대했었는데, 죄질이 중하다고 해서 실형 1년이 나왔었다. 만약 내 사건을 '김앤장'이 맡았다면 어땠을까? 그때도 과연 실형이 나왔을까? 집행유예가 나오지 않았을까?

씁쓸한 또 하나. '능력'있는 변호사가 과연 '좋은' 변호사일까? 다시 말해 '능력'있는 변호사가 '진실'을 더 밝혀낼 수 있을까? 이론적으론 맞지만, 현실적에서는 꼭 그렇진 않다.

변호사의 능력으로 치자면 '김앤장'이 최고일 것인데, 김앤장이 업계 1위인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다. 김앤장이 잘나가는 건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최대한 뽑아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김앤장이 안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대개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 입장에서도 '진실'을 떠나서 지는 것보단 당연히 승소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니 증언을 번복시켜서라도 재판을 이기고 싶은 유혹에 흔들린다. 그런 부담감이 자부심이 강한 거대로펌 소속 변호사는 더 할 것이다. '진실'이 승소하는 것이 아니라 '승소'하면 진실이 되는 현실인 것이다.

'이길 건 이기고, 질 건 져야 한다' 소송은 스포츠가 아니다. 이길 건 물론이고 질 것도 이기는 것이 변호사의 능력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변호사의 사회정의를 들먹이기 전에 그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도 서비스업이므로 고객에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변호사는 '상인'이 아니다(대법원 판례). 변호사가 왜 '변호사'이어야 하는가? 단순히 '호구지책'의 수단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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