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남녀가 만나는 것은 자기의 선택이지만 헤어질 땐 어떨까? 그만큼 자유로울까? 남녀간의 결합은 '연인'으로 시작해서 '약혼'을 거쳐 종착지인 '결혼'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한 쪽이 '변심'한 경우 자유롭게 헤어질 수 있을까? 상대방의 손해를 물어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먼저 '연인'사이. 아무런 제약이 없다. 마음이 변한 것을 어찌하랴! 그냥 '쿨'하게 보내주는 수밖에. 대신 '아픔만큼 성숙'하면 되리라.

그런데 '변심'에 대하여 정신적인 손해를 주장할 수 있을까? 없다. '연인'관계 당사자의 의사 및 사회적 관습은 상대가 싫어지면 '이유 불문'하고 언제든 떠나는 자유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약혼'사이. 이 단계에서 법이 개입한다. 그래서 우리 민법은 '약혼해제 사유'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약혼 후 불치병, 생사불명, 이유 없는 혼인 지연 등이다. 그렇다면 '변심'은 어떨까?

민법 제804조 제8호는 '기타 중대한 사유'를 약혼해제 사유로 들고 있는데 여기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 불문하고 이미 마음이 돌아선 것을 어쩌랴! 더군다나 약혼은 강제이행을 청구할 수도 없다. 다만 선의의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그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보상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 일방은 자신의 학력, 경력 및 직업과 같은 혼인의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하여 이를 상대방에게 사실대로 고지할 신의성실의 원칙상의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약혼은 혼인 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혼인의 예약이기 때문이다. 판례 중에는 남자가 서울시 '기능직' 공무원이면서 '일반직'이라고 속인 경우를 약혼 해제 사유로 본 것이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 단계에서는 상대가 동의해주지 않는 한 일방적으로 끝낼 수 없다. 일정한 '이혼사유'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사회적으로 '가정'의 유지가 더 우선되기 때문이다.

또 파경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좀 의문이다.

남녀의 헤어짐에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할지 말이다. 누구의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에 참작을 하면 되지, 이미 파탄이 난 상태로 구속되어 살라고 법이 강요하는 것이 타당한 것일까?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야 하는 고통(怨憎會苦)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과 함께 8고(苦) 중에 하나다.

서른 다섯의 봄에 필자는 5년간의 연인과 '결국' 이별한 적이 있다.

처음에 연인의 '변심'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세상에 없었다. 견딜만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몇 가지쯤은 배웠어야 했다. 그 당시 필자가 한 거라곤 멍한 표정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술을 마시거나, 그녀 집으로 찾아가는 거였다. 그렇게 사법시험을 팽개치고 한 동안 매달렸다. 간신히 그녀의 '변심'은 돌렸지만 그 다음해 사법시험 1차에 떨어졌다. 다시 헤어졌다. 이번엔 잡지 않았다. 잡을 수가 없었다.

사랑한만큼 아파야 끝나는 이별. '이별할 때 인격이 드러난다'는 말이 있지만, 헤어짐은 양쪽 모두에게 힘든 일임에는 분명하다. 적어도 한때는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 '이별범죄'라고 해서 이별하는 과정에서 애인이나 배우자로부터 3일에 1명꼴로 살해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4월, 경찰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통해 '이별에 관한 조언'을 했다.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하지 말고 남자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라. 폭력을 일삼는 남자는 빨리 결별하라. 남자친구의 폭력성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 환상이다.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뒤 잠적하는 것은 상대방의 집착과 폭력성을 키울 수 있다"고 말이다.

사랑하기에 떠나간다거나,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유행가 가사는 옛말이 되었다. 무조건 내 것이길 바란다. 그래서 사랑에 더불어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가 덜 상처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 juneb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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