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 조봉제 신한은행 충북영업부금융센터장

주먹은 폭력의 수단이자 정의실현의 상징이기도 하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의인들의 멋과 감동이 그곳에 남아있다.

요즘 모 케이블 TV에서 방영중인 '주먹이 운다'는 코너는 이런 주먹을 소재로 한 방송이다. 주먹 하나만으로 세상 앞에 우뚝 서려는 젊은 도전자들의 투지와 근성을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같이 우승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은 생존해야 했고 그 수단은 오직 주먹뿐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주먹은 난폭하고 무자비하며 잔인하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승과 패, 생존과 탈락이 결정되는 cage는 비정과 살기만이 어른거린다.

방송은 이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추적한다. 그리고 그런 승자들의 환희를 끊임없이 조명함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무한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단 한번의 패배로 탈락이란 아픔을 피할 수 없었던 실패한 도전자들, 이들이 보여주는 환희와 좌절 순간 하나하나가 더욱 가슴에 와 닿기 때문이다. 더욱이 굴곡진 삶에 대한 그들의 고백에는 가슴 뭉클함까지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바로 최연소 도전자이자 '악바리 고딩'인 박종혁 도전자와 그의 아버지인 탤런트 박준규가 보여준 눈물이었다.

cage에서 이들은 가족이기 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상대였다. 도전자들의 '멘탈 트레이너'이었던 그가 정작 아들의 경기에선 상대 경쟁자의 '트레이너' 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는 아들이 맞붙은 경기에서도 상대를 코칭하고 그의 승리를 위해 응원을 해야만 했다. 그것이 곧 그의 역할이자 책임이었으며 룰이었다.

마침내 경기는 시작되고 상대의 무자비한 펀치세례에 그의 아들은 무너져 갔고, 잔인한 그라운드 기술로 고통 받는 순간이 오자 오히려 그는 함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가 외친 함성은 안타깝게도 아들이 아닌 상대 도전자를 위한 함성일 뿐이었다. 다만 그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잘했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격렬했던 사투 끝에 아들의 도전은 그렇게 패배로 끝이 났고 탈락이 확정되는 순간 cage 밖의 부자는 깊은 포옹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그리나 이 장면 모두는 더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가족조차 잊어가며 자신의 일에 충실해야 했던, 그의 고뇌와 결단은 감동의 수준을 넘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이제 곧 연말이다. 한 해를 정리하고 매듭지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은 아직도 불안하다. 갈수록 심화되는 분열과 갈등 속에서 자기 몫만 생각하고, 자기 것만을 지키려는 공멸적인 경쟁은 이미 도를 넘은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은 금융권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종 사건사고에 사상유례가 없는 금융인들의 일탈행위는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이런 금융권을 일컬어 가장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집단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금융인으로서 각자에게 주어진 본업과 책임감 외면한 체 분에 넘치는 욕심과 무책임한 행위들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러기에 "본업을 통한 금융의 힘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자"라는 '따뜻한 금융'의 실천 의지는 이 시기에 적합한 가장 의미 있는 다짐이 아닐 수 없다. 모두를 위한 상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늦가을이 무르익는 길목에선 낙엽이 뒹굴고, 한낮 분주함으로 넘쳐나던 거리 곳곳에선 행인들의 발걸음도 뜸하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 계절, 보다 따뜻하고 감동 어린 삶의 모습들이 더욱 기다려진다. 아직도 주먹은 울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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