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 법무부 자문위원

필자가 삼성 법무팀에 재직하던 시절에 콜센터 직원들로부터 고객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해도 처벌받지 않느냐는 질문이 상당히 많았다. 아마도 고객으로부터 민원이 제기되었을 때, 계약당시 고객과의 녹취를 들려주면서 회사의 무고함을 입증하려다가 고객으로부터 오히려 왜 자신의 동의없이 통화내용을 녹음하였냐는 항의를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쉽게 짐작된다.

물론 통신비밀보호법상 녹음이 금지되는 것은 '타인간'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통화자가 상대방과의 통화내용을 상대방의 동의없이 녹음하는 경우, 이는 '타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본인과 타인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므로 그 통화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요즈음은 필자 스스로 고객의 입장이 되어 몇몇 회사 콜센터로 전화를 하게 되면 녹음을 하고 있다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고, 그 중 또 몇몇 회사에서는 통화내용의 녹음을 원치 않으면 통화를 끊어달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안내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회사도 있다. 녹취에 따른 법적 위험을 사전차단하기 위함이다.

통화내용을 녹음하기에 복잡한 장비가 필요하던 시절에는 통화내용 녹음이 회사의 전유물이었다면, 요즈음은 스마트 폰의 보급과 함께 일반인들도 자신의 통화내용의 녹음이 매우 쉬워졌다. 통화버튼 하단에 녹음버튼이 배치되어 있어 여차하면 통화내용을 녹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요즈음 소송과정에서 상대방과의 분쟁내용과 당사자의 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통화내용이 제출되는 경우가 종종(사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있다. 그 통화녹취록은 녹음한 자가 승소하는 유력한 증거로 쓰여지곤 한다. 그런데, 간혹 녹취가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있다. 녹취는 당연히 자신의 유리한 시점에 녹취하는 자가 의도한 바를 그 유도하여 실행되고, 그 녹취한 사람의 구미에 맞게 다듬어져서 녹취록으로 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계약을 파기할 목적이 있었거나 향후 소송을 염두해 둔 용의주도한 사람들에게는 녹취는 매우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말다툼을 피하고자가 하는 성향이 있어 구구절절 따지기 싫어서 묵묵부답하거나, 성의없이 "예예"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사실과 다른 녹취내용 때문에 아주 치명적인 약점을 잡힐 수 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사건 의뢰가 들어오면 의뢰인에게 혹시 녹취한 적이 있는지 혹은 녹취된 정황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곤 한다.

그러나, 녹취가 과연 만능열쇠 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화내용 녹음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민사적으로는 불법행위로 인정되어 역으로 피녹취자로부터 손해배상청구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상대방의 동의없는 비밀녹음은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 하급심 판례에서도 비밀녹음의 경우 무단히 녹음한 사람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경우가 있다(2013나8981 사건 등). 무분별한 사진ㆍ영상 촬영에 의한 초상권침해와 유사한 구조이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녹취, 방송 또는 복제ㆍ배포되지 아니할 권리인 '음성권'을 가진다. 이 음성권이라는 생소한 권리는 헌법 제10조 제1문의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국가 간섭 및 제3자의 침해로부터 보호된다.

또한 헌법상 개인에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인정되고 있고, 이에 따라 개인은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피녹음자의 동의없이 전화통화 상대방의 통화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여 이를 재생하여 녹취서를 작성하는 것은 민사소송의 증거를 수집할 목적이었고, 통신비밀보호법상 처벌되지 않는 행위라 하더라도 당연히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녹취는 재판의 승리의 도구이자 또다른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이 되는 양날의 검이다. 개인영역에서 그 양날의 검이 가지는 위험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녹취의 만연으로 인해 시민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여, 의사표현에 앞서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새로운 통제사회가 도래할 위험은 그 폐해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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