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국에 「붉은 악마」가 있었다면 곧이 들을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는 홍도(紅陶)라 불리는 「붉은 간토기」가 자주 출토된다. 토기 표면에 붉은 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이 토기는 제천 황석리, 충주 조동리 등지에서 나온바 있다.
 그 많은 색깔중에 하필이면 붉은 색을 썼을까. 그것은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뜻을 담고 있다. 잡귀는 붉은 색을 싫어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사기(史記) 등 중국의 사서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치우천왕(蚩尤天王)이 등장한다. 이 천왕은 동이족, 즉 우리민족의 제왕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대 중원에서는 이를 군신(軍神)으로 추앙되기도 했다. 치우의 능에서 붉은 연기가 휘날리면 전쟁이 일어날 조짐으로 믿었다 한다.
 치우천왕에 대한 주술적 믿음이 한반도로 옮겨지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치우는 「도깨비」로 변형되는 과정을 겪는다. 민간신앙에서는 도깨비를 치우장수(蚩尤將帥)로 높여 부르기도 한다.
 도깨비는 민간신앙속에 설화속에, 또 전통건축의 양식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밤새 도깨비와 씨름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외에도 도깨비 불에 혼쭐이 났다는 이야기,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도깨비 방망이 등 도깨비 설화는 도처에 널려 있다.
 한옥의 기와중 마무리를 하는 막새기와라든지,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는 치미 기와를 보면 도깨비를 새겨넣은 귀면와(鬼面瓦)가 유난히 많다. 흥덕사지에서는 무려 1m 36cm에 달하는 치미가 출토된바 있는데 여기에도 귀면문(鬼面文)이 조각되어 있다.
 이 또한 사악함을 막는다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귀신으로 귀신을 막으니 이이제이(以夷制夷)인 셈이다. 도깨비는 이처럼 여러 장식에 응용되며 다른 잡귀가 문전에 얼씬거리는 것을 막았다. 문고리에도 「도깨비 문고리」가 있다.
 임진왜란때 영남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의 간담을 서늘케한 곽재우(郭再祐)는 자는 계수(季綏)이고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나 이보다도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왜적과 싸움을 할 때 늘 붉은 옷을 입고 신출귀몰하였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었던 것이다. 왜적이 붉은 옷만 보면 오금이 저려 도망을 갔다 한다.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현철의 야들야들한 「봉선화 연정」이 말해주듯 봉선화(봉숭아)는 울밑에서, 장독대 주변에서 새악시마냥 수줍게 피어 있다가 손만되면 활화산처럼 터지고 만다.
 한국인의 정서를 흠뻑 머금은 봉선화를 울밑이나 장독대 주변에 심는 것은 미적인 감각과 더불어 들짐승의 침입을 차단시켰던 것이다. 짐승은 본능적으로 붉은 색을 싫어한다.
 월드컵에서 한국 응원단의 대명사가 된 「붉은 악마」의 역사는 이처럼 오래된 것이다. 「붉은 악마」의 공식 캐릭터로 치우천왕이 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물쇠 수비와 적토마같은 우리 팀의 공격은 이러한 역사 문화의 힘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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