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변호사 법무부 교정 자문위원

1963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 경찰은 납치·강간범인 미란다를 체포했다. 그후 미란다는 경찰관으로부터 묵비권 등에 대한 권리를 고지받지 않은 상태에서 약 2시간에 걸쳐 피의자조사를 받았고, 수사를 통해 곧 미란다로부터 납치·강간의 자백 진술을 받아 냈다. 이로써 미란다는 애리조나주의 1심법원으로부터 납치와 강간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각각 징역 20년과 30년을 선고받았고, 애리조나주 상소법원도 원심을 지지하는 판결을 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파기됐다. 즉, 조사관들의 증언과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토대로 볼 때 미란다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경찰의 신문 중에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으며 진술거부권도 여러 가지 면에서 효과적으로 보장받지 못했다는 것, 이러한 피의자에게 필요한 법적 권리 등을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의자신문조서상의 자백은 증거로 쓰일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 미란다 사건을 계기로 묵비권을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낸 피의자의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이른바 미란다 원칙이 확립되기에 이르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법치주의 국가에서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나라는 묵비권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즉, 헌법 제12조 제2항에는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진술거부권을 국민의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에서는 이를 더욱 구체화해 동법 제283조의 2 제2항은 '재판장은 피고인에게 진술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할 수 있음을 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란다 원칙은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에서 규정하고 있는 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①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②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③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④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함에 있어서 피의자에게 미리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아니해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이 갖게 될 효과를 잘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한 자백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이므로 진술자가 임의로 진술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나아가, 미란다 원칙에 의해 고지받은 묵비권을 피의자가 행사하는 것이 죄를 반성하거나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것으로 평가해 판결시 이를 고려해 중한 형을 선고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이는 일반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있다.

변호사인 변호인에게는 변호사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른바 진실의무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변호인이 신체구속을 당한 사람에게 법률적 조언을 하는 것은 그 권리이자 의무이므로 변호인이 적극적으로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 하여금 허위진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헌법상 권리인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알려 주고 그 행사를 권고하는 것을 가리켜 변호사로서의 진실의무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한 바도 있다.

그럼에도 최근 검찰은 피의자에게 묵비권 행사를 권유한 변호사를 징계하라고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다.

피의자에게 그의 헌법상 권리를 이해시키고, 적절한 방어권 행사의 일환으로 묵비권을 권유한 성실한 변호사를 도대체 어떤 명목으로 징계할 것인가? 변협에서 징계를 거부하면 법무부에서 변호사 징계에 관한 재심을 하게 되는데, 검찰이 실질적으로 법무부인 상황에서 법무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검찰이 자충수를 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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