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변호사 법무부 교정 자문위원

지난해 9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기업인이라고 해서 엄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은 경제살리기에 도움이 안된다"며 기업인에 대한 사면과 가석방 가능성을 내비친 이후 이를 대통령에게 건의했다고 한다. 이에 여당의 중진의원도 "경기부양 차원에서라도 기업인들의 사면이나 가석방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를 거들었고, 일부 야당 중진 의원도 동의의 뜻을 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야당 국회의원과 시민단체들은 기업인에 대한 사면등에 강한 거부감을 표하며 크게 반발하였다. 이에 당혹스러워진 정부는 기업인에 대한 형집행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일단의 사태를 진정시키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면과 가석방.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 두 가지는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성, 법적 재판과 다른 소중한 가치와의 조화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실현한다는 측면과 이미 교화되어 재범의 우려없는 재소자들의 빠른 사회 복귀를 돕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필요한 제도이기는 하다.

 사면권은 절대왕정 하의 군주의 대권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형사소송법이나 그 밖의 형사법규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형의 선고의 효과 또는 공소권을 소멸시키거나 형집행을 면제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사면권은 사법부의 판단을 대통령이 변경시키는 것이므로 권력분립의 원칙과 긴장관계가 있고 결과적으로 법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활용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사면권에 관하여 찬반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다. 법치주의가 발달한 독일에는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다'라는 법언이 있고,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하였다고 평가되는 미국에서조차 '연방의회가 대통령 사면권에 제한을 두는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할 만큼 사면제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역설하고 있는 것을 보면 사면권은 국가원수의 고차원적 정치적 결단으로서 분명 필요한 것으로는 생각된다.

 그러나, 과거 군사독재시대에서는 대통령이 폭력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고 그것을 완화하는 방편으로 은혜를 내리듯 사면을 이용한 예가 대부분이었고, 근래에는 권력형 부정부패 사범들에 대해 대통령이 정치적 거래의 수단으로 사면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기업인 사면에 대한 국민의 감정이 좋을 리는 없다.

 또한 이번에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언급된 기업인 가석방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가석방은 자유형(징역 등)의 집행 중에 있는 수형자가 '행장(行狀)(필자주 : 행장이란 교도소에서 수감자의 품행을 평가한 성적을 말함)이 양호(良好)하여 '개전(改悛)의 정(情)'이 현저한 때'에는 형벌의 목적이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판단하여 수형자의 사회복귀를 촉진하는 매우 선진적인 제도이기는 하다.

 기업인의 가석방도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행장의 양호'와 '개전의 정'이 있다면 허용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가 밝힌 국가 경제살리기라는 대의(?)는 가석방의 허용요건은 아니다. 우리나라 가석방 허가율은 2010년 현재 13.2%에 불과하다. 일본을 비롯한 구미 선진국들의 가석방율이 50%를 넘는 것에 비하여 매우 소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기 조차하다. 그럼에도 국가 경제활성화라는 초법규적 요건을 내세워 소수 경제인의 사기진작을 위해 가석방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가석방이 불허되는 86.8%에 해당하는 국민들을 충분히 자극할 만하다.

 그럼에도 경제살리기를 위해 기업인들에게 사면이나 가석방이라는 면제부를 주자는 주장이 정부 주요인사와 여야의 유력한 국회의원들로부터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있다. 이는 '유전무벌, 무전유벌'의 사회를 정부와 사회지도층인사들이 나서서 조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죽었는지 몰라도 만일 정말 죽었다면 당연히 경제를 살려야 한다. 하지만, 소수 기업인에게 은사를 내려서 경제가 살아날지 의문이거니와, 정말 살아난다 하더라도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살아난 경제는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좀비 경제가 될 우려가 크다고 생각한다. "만인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기본적 정의가 지켜지면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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