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변호사 법무부 교정 자문위원

모 케이블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미생이 수많은 신드롬을 남기며 종영했다. '미생'은 바둑에서 두 집을 짓지 못해 아직 살아남지 못한 불안한 상황을 일컫는다고 한다.

드라마 '미생'은 고용불안에 떠는 88만원 세대의 불안전한 삶, 언젠가 회사에서 떠나야만 하는 중년 회사원의 위태로운 삶을 바둑용어 미생에 빗대어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모든 면에서 완생일 수 없는 탓에 고단하게 삶을 이어온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아마도, 지금이 세대와 계층을 통틀어 모든 면에서 미생인 시대 탓인 듯하다.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경제는 불경기 아닌 때가 없었고, 정치적으로는 태평성대라 여긴 적이 없었고, 역사책을 뒤적여 봐도 적어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창건한 이래 우리나라 민초들이 완생의 시대를 누린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니 완생은 아마도 꿈인가 보다.

흔히들 힘들 때 끝까지 힘이 되는 것이 가족이라고 여기곤 하는데, 안타깝게도 가족의 탄생의 기초인 결혼의 경우도 미생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결혼식을 치루면서 부부는 영원을 약속하며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할 것을 서약한다. 그러니, 통상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천수를 누리다 그 일방이 자연사에 이르렀을 때에 비로소 완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이혼율이 아시아 최고라 하고, 각종 질병이나 사고, 인재에 가까운 재난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매우 많아진 탓에, 지금의 한국인들에 있어서 결혼의 완생은 오히려 드문 현상인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필자는 직업의 특성 탓에 많은 이혼사건을 진행하고 있고, 이혼과 관련한 상담을 거의 매일 한다. 그 중에는 잘못된 결혼과 그로인해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에게까지 고통을 안기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 중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미생의 정도가 아니라 이미 죽은(旣死) 상태임에도 오로지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속박하는 의뢰인의 경우는 참 난감하다.

바둑에 사활(死活)풀이라는 것이 있다. 사활은 바둑돌이 어지러이 놓여있는 미생의 상황에서 특정한 한 수를 두게 되면 그 돌들은 죽거나(死) 사는 것(活)으로 정해져 버리는 일종의 방정식 풀이와 유사한 것이다. 사활이 중요한 것은 이미 죽어버린 돌무리에 다른 돌을 얹는 것은 무익하고 해롭기까지 하므로 사활을 미리 알고 이미 사석이 된 판에는 더 이상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혼을 상담하고 사활에 대한 판정을 들은 후 계속 돌을 놓다가 한참 후에 다시 변호사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본인의 상황이 미생인 것으로 믿고 노력해 보았으나 한참 후에 이미 죽어버린 결혼관계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상담 후 다시 변호사를 찾아올 그 사이에 본인에게 새로운 이혼의 책임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애초에 이혼의 조건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위자료를 받기가 어려워질 수 있고, 자녀에 대한 양육권 지정에 있어서도 불리하게 작용된다.

바둑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프로기사들은 일반인들 보다 사활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듯이, 이혼을 많이 다루는 변호사의 경우 당사자들보다 그들 결혼의 사활에 대해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런 까닭에 필자가 결혼의 참된 의미나 삶의 정답을 논할 나이는 아니지만, 일반인이 경험하는 결혼이나 이혼의 횟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험을 하고 있기에 그들 결혼의 사활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결혼의 완생은 일방의 자연사로 끝난다. 그러니 어쩌면 결혼의 행복은 미생에 그 본질이 있지 않을까? 필자를 포함한 여러분들의 결혼생활이 아름다운 미생으로 영원히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