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사무소 '충청' 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총리 임명을 둘러싸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이면서 후보자 개인의 명예와 관련한 사실이 연일 폭로됐었다.

일반인 같은 경우라면 그러한 사실이 적시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을 만한 사안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총리후보자는 공인이기에 그런 수모를 감수해야 한다. 공직자도 인간인데 수모를 참아야 하는 것이 비인간적인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는 후보자의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법적으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는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가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르면 명예훼손죄는 사실 혹은 거짓을 적시해 '사람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훼손한 자를 처벌한다. 그러나, 명예훼손적 사실을 적시한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 바, 공인에 대한 사실적시가 상당수 처벌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명예훼손을 벌한다는 규정을 둠으로써 가장 혜택을 보는 부류는 대체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권력자들이다.

명예훼손죄는 누군가의 명예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민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권력자에 대한 국민의 적절한 견제를 억압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발달해 갈수록 명예훼손에서 가장 큰 이슈는 공인에 대한 명예보호와 국민의 알권리 혹은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공인의 사생활은 일반 사인의 사생활처럼 오로지 개인의 영역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사인의 사생활만큼 보호되지 못하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 등지에서는 그런 문제점을 시정하고자 일찍부터 '공적인물이론'을 정립해 공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명예는 일반인들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보장해 국민의 알권리 또는 표현의 자유와의 충돌문제를 해결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공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공직선거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매우 폭넓게 인정되고, 검사가 이러한 의혹제기 한 자를 후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하면 오히려 국가가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의혹제기한 당사자에게 현실적 악의가 있었음을 추가로 입증해야 하는데, 현실적 악의의 입증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미국 판례에 따르면 "공적인 관심사(public issues)에 대한 토론은 제한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널리 열려 있어야 하며, 이러한 토론은 정부나 공직자에 대한 격렬하고 때로는 불쾌할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을 포함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자유로운 토론에는 때로 잘못된 표현도 불가피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숨쉴 공간(breathing space)'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잘못된 표현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어, 미국의 공인은 허용된 명예훼손 먹잇감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전관 변호사로부터 해고된 변호사 사무장이 모방송을 통해 검찰과 법원에 변호사가 로비한 내용을 폭로해 이에 연루된 검사 6명과 판사 2명이 사표를 제출한 사건이 있었는데, 법원에서는 이 사건 비리 보도로 인해 대전지검 검사들의 명예가 훼손됐으므로 검사들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한 바 있다.

또한 17대 대선과 관련해 "모 후보자가 공모해 주가조작 및 횡령을 하였다는 사실"을 발언한 자에 대해서는 주장에 상당한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후보 장인이 인민위원장 빨치산 출신인데 애국지사 11명을 죽이고 형무소에서 공산당 만세 부르다 죽었다, 공산당 김정일이가 총애하는 ○○○이가 정권 잡으면 나는 절대 못산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모당 소속 선거대책자문위원회 의장의 발언에 대해는 이는 '공공의 이익'에 해당한 발언이므로 무죄라고 선고한 바 있다.

공인의 명예훼손과 관련한 미국과 한국의 상반된 판례, 그리고 유무죄에 대한 어떠한 실질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반된 우리 판례는 아직 갈길이 먼 우리나라의 법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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