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뗀 석기(타제석기)를 생활용구로 사용하던 구석기는 시대에 따라 다시 전기 구석기, 중기 구석기, 후기 구석기로 나뉘어진다. 학자에 따라 약간씩 견해가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전기 구석기는 30~50만년전, 중기 구석기는 10만년을 전후로 하며 후기 구석기는 2만년 안팎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기 구석기 유적으로는 연천 전곡리, 청원 두루봉 등을 꼽을 수 있고 후기 구석기로는 단양 수양개 유적이 단연 간판스타다. 지난 1983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8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된 수양개 유적에서는 교과서에 수록된 주먹도끼를 비롯하여 슴베찌르개, 좀돌날 몸돌 등 수만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전기 구석기의 특징은 석기가 대체적으로 크며 떼기 수법이 거칠다. 중기를 거쳐 후기로 접어들면서 석기는 점차 작아지고 잔손질이 많아진다. 이른바 세공기술이 차차 발달한 것이다. 수양개의 슴베찌르개는 사냥도구의 일종으로 나무등에 끼워 수렵에 이용됐다. 이 석기는 연해주 우수티노프카, 큐슈 가고시마 등 동북아 지방에서 널리 출토되는데 수양개가 그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학회에서도 여러차례 검증받은 수양개 유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동북아 후기 구석기의 보고(寶庫)인데 지난 15일부터 단양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학술회의에서 발굴당사자인 이융조 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 조태섭, 공수진 교수(충북대)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발표되었다.
 단양군은 수양개 야외전시관 건립을 앞두고 건립부지를 강물이 차오르지 않는 철탑 부근으로 잡았다. 수양개 제3지구로 명명된 철탑부근을 시굴조사한 결과 해발 160m지점의 제3단구에서 사냥돌 등 35만년~60만년 정도로 거슬로 올라갈 수 있는 전기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것.
 찰흙층에서는 잔손질이 있는 주먹대패, 새기개, 뚜르개 등이 찾아졌다. 그래서 유물전시관의 위치변경이 불가피하게 됐다.
 1지구는 원래부터 발굴조사가 되었던 곳이고 그로부터 하류로 5백m쯤 떨어진 곳에는 대대적인 초기철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28기에 달하는 방형의 집터가 나왔는데 대부분 화재로 소실된 형태였고 떡시루 등 토기류도 상당수 출토되었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때 단양 수양개 유적은 단일 유적이 아니라 전기 구석기부터 후기 구석기, 그리고 초기 철기시대로 이어지는 복합 유적이라는 사실이 규명된 것이다. 단지 의문이 있다면 전기 구석기 시대에는 대개 동굴생활을 하였는데 어떻게 야외로 나와 석기를 만든 것일까.
 동굴에서 생활하면서 수양개 강가에 나와 공방(工房)을 차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전기 구석기 부터 이미 야외로 나와 생활을 한 것일까. 이러한 의문의 해답은 추후 연구를 통해 얻어질 것이다. 수양개 유적의 새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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