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제천 백수오 피해 농가를 가다재배면적 100만㎡ 계약農 80% 직격탄노후 대책 위해 빚까지 냈는데 '속앓이'믿음 깨져 판로 불확실 … 정부가 나서야

'가짜 백수오' 파문이 소비자 피해 보상소송 등으로 이어지면서 날로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일로 백수오 재배농가 또한 선의의 피해로 시름하고 있다. '한방의 도시' 제천의 백수오 재배농가를 찾아 피해현황과 대책, 농민 입장 등을 들어봤다. / 편집자



"산천은 고목이 지키고 땅은 농사꾼이 지키는 것이야. 중간 놈들이 장난질하는 것이지 땅 일궈서 먹고 사는 우리는 거짓말 못해."

지난 16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구곡3리에서 만난 농민 이봉주(68)씨는 자신의 밭에 어른 무릎 정도 높이까지 자란 백수오를 보며 가슴을 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살 때부터 50년 넘게 땅과 함께 땀 흘리며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요즘처럼 울화가 치밀기는 처음이라며 헛웃음만 지었다.

비 난리에 산사태까지 갖은 재난으로 피해를 봐도 하늘의 뜻이겠거니 생각하고 묵묵히 고향 땅을 지켰는데 사람에게 배신당한 것이 너무 억울했다.

"홍수가 나도 참고, 흙이 쓸려 내려와 밭을 뒤덮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람 장난질에 이렇게 피해를 보니 부아가 치밀고 잠을 못 자겠다"며 그가 자신의 백수오밭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라고 말한 그는 아무리 '토종(진짜) 백수오'라 해도 이미 사람들(소비자)의 믿음이 떠나 판로마저 불확실한 자신의 백수오를 뽑아버리고 다른 작물도 심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현장 실사를 나온 사람들이 자신이 키우는 백수오는 진짜 백수오이고 밭의 토질도 좋으니 1~2년 더 키우라는 말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오늘도 백수오밭을 가꿨다.

이씨는 "사람들이 우리가 키운 것이 진짜라고 믿어주면 좋으련만 한 번 떠난 마음이 쉽게 돌아오느냐"고 되물으며 "그래도 여기(제천)에서 키운 백수오만큼은 진짜 '토종 백수오'라 믿게끔 이놈들(백수오)을 실하게 키우겠다"며 작은 희망을 내비쳤다.

이씨처럼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걸고 토종 백수오를 키우는 농민도 있지만, '가짜 백수오' 여파에 노후까지 걱정해야 하는 농민도 있었다.

봉양읍 구곡1리에서 만난 박승근(64)씨는 다른 사람의 밭을 빌려 3천305.8㎡(1천평)에 올해 처음으로 백수오를 심었다. 하지만 '가짜 백수오' 사건이 터지면서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을 어디에다 이야기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다.

그는 "시에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라고 해서 300평에 쌀 한 가마니 값을 주기로 하고 2천평을 빌려 백수오를 심어 노후 대책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이 난리가 나는 바람에 반 밖에 심지도 못하고 환장할 노릇"이라며 맥없이 하늘만 쳐다봤다.

땅을 빌리고 빚을 내 백수오 재배를 위한 각종 농자재도 마련한 터라 이번 '가짜 백수오' 사건의 피해가 농가에까지 미치면 노후 대책은 고사하고 빚만 떠안게 생겨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더 짙어 보였다.

'가짜 백수오' 사건의 불똥에 박씨처럼 시름이 가득한 제천지역 농가만 80여 농가에 달한다. 재배 면적만 100만㎡ 이상이다. 이들 농가 대부분인 80% 정도가 '가짜 백수오' 파문의 중심인 내츄럴엔도텍과 계약 재배를 맺어 묵묵히 땅만 일궈온 농가의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홍성주 봉양농협조합장은 "백수오를 키우는 농민은 그 잎만 봐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있다"며 "이미 시료를 채취해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결과가 빨리 나와 제천지역의 백수오는 진짜 '토종 백수오'라는 것이 증명돼 농가 피해가 없도록 제천시나 정부 차원에서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 특별취재팀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