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변광섭 동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

봄은 항상 기다리는 것보다 늦게 오고 빠르게 간다. 북풍한설을 뚫고 피어나는 꽃들의 잔치를 생각하면 좀 더 오랜 시간을 봄의 화원에서 즐기고 싶지만 시간은 엄연하다. 벌써 초여름의 기운이 돌고 있으니 말이다. 꽃과 바람 사이에서 태어난 은빛 햇살이 눈부시다. 서걱대며 흔들리는 대숲에, 송홧가루 흩날리는 솔잎에 햇살이 잠시 지친 몸을 뉜다. 길 가던 나그네도 자연에 기대어 무념무상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순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때를 가려 움직인다. 다투지 아니하고, 만물을 이롭게 하며, 그 공을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뇌를 통해서 단단해 지고,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행복을 찾는다. 물과 같은 삶일수록 사람도, 도시도, 시대도 태평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항상 욕망에 젖어 있다.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를 갈구하지만 쉽지 않다.

삶이 고단하고 치열할 때, 나의 길이 막막하고 정처없을 때 강가에 나가 흐르는 물을 가만히 바라본다. 물은 서두르지 말고 다투지 말라한다. 시대의 흐름과 방향을 따라 서로 손잡고 함께 가라고 한다. 그러면서 결코 머뭇거리거나 뒤를 돌아보지 말라 한다. 역경 속에서 단련되고, 수난 속에서 강해진다며 더 많이 이루지 못한 것에 분노하지 말라고 한다. 때가 되면 스스로 그러함에 처하는 게 자연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최고의 예술을 꿈꿨다.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을 문화로, 예술로 특화시키고 이것들을 중국과 일본으로 확산하는 일을 자처했다. 청주, 칭다오, 니가타 개막식을 경쟁처럼 치렀다. 중국과 일본보다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칭다오와 니가타 시민들에게 청주의 예술혼을 보란 듯이 자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진정한 동아시아문화도시의 의미이자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동아시아문화도시를 설계했다. 이미 일부 시민 스스로가 동아시아 무대의 주인이 되고자 재능기부로 공연을 하고, 특강과 전시를 하며, 홍보를 자처하지 않았던가. 도른도른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 하고 아름다운 날을 빚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최고의 날은 이처럼 자발적이고 선하며 함께하는 가운데 만들어 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민이 만들어가는 동아시아문화도시는 동아리경연대회, 재능기부, 자원봉사와 시민도슨트 등의 다양한 콘텐츠로 이어진다. 5월 21일부터 한달간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열리는 문화주간 행사에서 시민동아리의 재능기부 공연은 경연대회로 진행되는데 우수팀은 칭다오와 니가타를 방문해 교류공연의 시간을 갖는다. 전문 예술인들만의 성찬이 아니라 시민들이 무대에서 아름다움을 변주토록 하기 위해서다. 이와함께 '생명문화도시 청주'를 테마로 한 특별전에서는 시민들의 가보를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장롱속의 애틋한 사연과 소중한 것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골동품이면 어떻게 현대미술품이면 어떤가. 이것들이 모여 청주라는 도시의 이야기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더 이상 나만의 것으로 움켜쥐지 말고 함께 그 가치를 나누고 향유하자는 것이다.

올 한 해 청주시내 곳곳에서는 재능기부 공연, 특강, 전시 등이 펼쳐지면 좋겠다. 이미 바이올린 신동 장유진은 재능기부 콘서트를 약속해 29일 저녁에 청주아트홀에서 멋진 공연을 선보인다. 작은 거장 장유진의 바이올린 선율을 함께 하면 좋겠다. 이처럼 아름다운 일들이 물처럼 흐르고 번지고 생명의 가치로 이어져야 한다. 곳곳에서 노래하는 소리와 춤사위가 펼쳐지고, 인문학 특강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다채로운 전시문화로 미적인 사유의 공간이 되면 더욱 좋겠다. 동아시아문화도시 이어령 명예위원장은 말했다. 에디슨이 되지 말고 테슬러가 되자. 가슴 떨릴 때 일을 하라. 빙상경기는 코너에서 승부가 결정된다. 남들이 망할 때 반드시 흥하는 사람이 있다. 레고처럼 결합과 융합의 능력을 키워라. 청주라는 도시가 그 시발점이 되고 확산의 가치로 승화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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