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최우식 '사람&사람' 대표변호사

포르투갈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일본남성에게 갑자기 앞이 하얗게만 보이게 되는 눈병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그 눈병은 그를 도왔던 거리의 행인에게 옮겨지고 최초 발병인을 치료하려 했던 안과의사에게도 옮겨진다. 병에 걸린 사람들이 늘자 정부는 수용소에 사람들을 격리시킨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들만 있는 수용소는 혼돈의 상태로 빠져든다. 앞을 못보게 된 이상 사람들은 남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옷을 벗고 다니고 용변은 아무데서나 해결한다. 급기야 총을 가진 한 남자가 식량을 배급하겠다고 하다가 결국은 여자를 요구하게 되고, 여성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그에게 간다. 영화는 인간의 기본적 생존본능에 처절하게 파괴된 인간성의 끝을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이 영화의 '눈'에 해당하는 것은 '정보'다. 실례로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초행길은 떠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눈뜬 장님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무지(無知)라는 것이고, 그 무지는 공포를 낳고, 공포는 불안을 낳는다. 그 공포를 통하여 권력자는 집단을 통제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철저하게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의 공개를 거부했다. 그 공개 거부의 내막에는 대형병원의 경제적 손실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 사이에 2차, 3차 감염자가 급속히 늘었다. 그래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메르스 확진을 받은 의사를 공개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의 메르스 의심환자의 주거지와 직장, 자녀학교 등의 실명공개가 잇따르자, 정부는 뒤늦게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병원명단을 공개했다.

정부는 국민을 '바보'로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 진짜 국민이 알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그랬을까? 필자는 50대 후반에 지병이 있는 장모님과 이제 3살인 첫째와 엄마 뱃속에서 9달째 둘째를 키우고 있는 아내가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그저 독감에 불과하다며 불안해하지 말라는데, 그럼 병약한 노인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국민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어느 병원에서 누가 전염되었으며, 그가 누구를 만났고,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 공개가 개인의 사생활침해라며 위법하다고 주장하나, 국민은 감염병 발생 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공중위생 등 공공의 안전과 안녕을 위하여 긴급한 경우로서 일시적으로 처리되는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의 동의 등 법적절차 없이도 공개할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개는 이 법에 따른 것이어서 타당한 것이고, 공익을 위해 사익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어서 그 개인에게는 수인되어야 할 의무이다.

정부는 초기 대응을 물론이고 국민이 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지 지침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메르스 발생 병원은 물론이고 환자가 거쳐간 병원도 밝히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SNS상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소문들이 난무했는데, 그것은 정부가 사태의 본질을 숨기고 국민은 어떻게 해야 감염을 피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언론은 계속 메르스 확산 소식만 전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만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는 식으로 국민들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정부가 관련 병원명단을 공개했더라면 그런 괴담이 퍼졌을까?

유언비어, 괴담도 메르스와 비슷하다. 둘 다 건강하지 않는 사회, 내성이 없는 사람을 숙주로 해서 살아간다. 메르스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리 걱정할 건 없다는데, 왜 이 난리를 치는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않다는, 내성이 없다는 반증이다.

자,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것을 보고 듣지만, 어떤 것은 보고도 안본 척, 들어도 안들은 척 하지 않았는가?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서 고작 능력이라고는 삽질과 이빨만 살아있는 자들에게 권력을 던져준 결과가 지금이 아닐지. 지금 우리는 눈먼 자들을 수용하는 병원에 수감된 신세와 별반 다름없어 보인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자각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자들은 아프게 깨달을 것이다. 성장과 효율이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가 잃은 가치들에 관하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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