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률법인 충청 대표변호사 법무부 교정자문위원

필자는 군대에 재입대하는 악몽을 가끔 꾼다. 꿈속에서 필자는 이미 재입대 되어있고, 주변 사람들은 필자가 이미 제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공식적으로 이를 입증할 자료는 국방부에만 있기 때문에 필자가 직접 그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억울해 하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깨어나거나, 어떤 경우는 드디어 재입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혔는데 그때는 이미 2년이 흘러버렸다는 것이다.

필자가 병장 만기로 군대를 나온 지가 거의 이십년이 다되어 가는데도 이런 악몽을 꾸고는 하는 이유는 아마도 군복무중 압박감이 일생에 겪었던 최고의 긴장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국가가 강제력으로 사람을 일정기간 붙잡아 놓고 일을 시키는 것을 '역(役)'이라 한다. 우리나라 헌법상 '역'은 죄지은 자에 대한 '징역(懲役)'과 국방의무인 '병역(兵役)' 두 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건장한 남성의 입대의 스트레스는 죄지은 자가 징역형을 받아 복역하는 스트레스와 비등비등하거나, 어찌보면 죄와는 상관없이 건강한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병역이 더 큰 스트레스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런 이유로 병역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민감한 이슈다. 가수 싸이는 불성실하게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제대했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받자, 이를 소송으로 다투어 재입대를 피할 수 이었지만 다시 군복무를 하여 재기에 성공하였는가 하면, 가수 유승준은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국적을 얻어 병역을 회피하였다는 이유로 십년이 넘도록 한국에 입국이 거부되고 있고, 과거 여당 모 대선후보는 자녀의 병역문제로 대권의 눈앞에서 번번히 좌절된 적이 있을 정도이고, 구속수감중인 어떤 대기업 총수는 딸이 해군에 자원입대한 것을 계기로 좋지 않았던 이미지가 일거에 좋아지기까지 하였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병역 문제는 개인의 운명은 물론 국가운영의 향방을 좌우할 정도로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 그만큼 적용의 융통성과 관련하여서는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고려되어 필요이상으로 견고하게 지켜지고 있다. 특히 다른 헌법상 의무위반에 비하여 병역의무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는 대법원 판례도 마찬가지여서, 이제 병역의무 부과의 융통성이라는 말 자체는 역린이 되어 언급조차 터부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특정한 이슈가 필요이상으로 민감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 분야에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인된 병역 비리가 아닌 의혹만으로도 유력 정치가의 정치생명이 끝나버린다거나, 권장할 수는 없지만 허용되어 있는 방법으로 병역의무를 면한 개인에게 국가차원의 보복을 하는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병역문제에 대하여 국가와 사회가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동양에서 '역(役)'의 기원은 전근대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고 노동력을 징발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세금과 노동력의 징발이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면 한 나라가 쇠퇴하게 된 적이 빈번하였고, 그 위기에서 세금과 노동력의 징발을 합리적으로 개선한 성군를 만나게 되면 그 나라는 중흥기를 맞이하곤 하였다.

병역의무 이행의 융통성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이 대체적 복무제도의 활성화이다. 즉, 개인적 신념이나 그밖에 개인이 보유한 기능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직접 군대에서 복무하는 대신에 그에 준하는 어려움을 가진 사회적 활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대체적 복무제도는 현재 입대와 동시에 교도소로 직행하는 몇몇 집총 거부자들에 대하여도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이 6.25전쟁을 준비할 당시 인민군에 징집된 안식교 청년들이 기독교 신앙을 내세워 끝까지 집총을 거부하자 인민군은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비무장 병과에서 근무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1950년대의 야만적인 북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진보되어 있는 2015년 대한민국에서 보다 합리적인 병역제도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대체적 복무제도와 관련하여 헌법재판소는 10여년 전부터 입법자로 하여금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라는 법익의 갈등관계를 해소하고 양 법익을 공존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숙고하여야 한다고 권고한 바도 있었다. 병역제도에 대한 과민함을 치유하고 병역문제로 국론이 사분오열되지 않도록 백년 앞을 바라보는 병역제도의 개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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