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법무부 교정자문위원

올해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다. 매년 광복절에 즈음하면 친일 청산의 문제, 그리고 일제시기의 잔재를 일소하자는 각종 캠페인이 우리나라를 휩쓴다. 갑작스런 해방에 이은 한국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정의를 세우는 문제보다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하는 1차적인 문제를 해결하여야 했던 우리나라 슬픈 자화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지표는 세계 10위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각종 제조업에서 국산화율이 크게 높아진 것을 보면 경제분야는 크게 성장했다. 식민수탈과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된 국가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고도의 발전을 이룬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문화분야의 국민 만족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법제사법 분야의 신뢰도는 조사국 중 최하위 수준에 해당한다. 법을 다루는 필자로서는 상당히 민망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낮은 신뢰도의 주요 원인을 전관예우 문제나 지연학연에 따른 판결, 폐쇄적인 연수원 기수 문화 등 주로 사람에게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제도속에 존재하는 사람의 일탈의 문제만으로는 후진성을 질타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그 원인이 광복후에도 외국, 특히 일본의 법제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우리 국민에게 잘 맞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인간의 사회생활 보장과 질서의 기본적인 규범이 법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법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이 온전히 녹아있어 마치 편한 일상복 같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방 후 국민정서를 법에 온전히 담을 시간이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아니해 법제와 관련하여서는 여전히 남의 옷을 입은 듯이 무언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그러니 법에는 합치하지만 많은 국민의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1894년의 갑오개혁 당시 사법제도 개혁을 위해 법관양성소를 설립하여 법률가를 양성하려고 하였고, 유럽의 법학서적을 번역하는 등 근대적인 법학과 법사상을 수용하려고 하였으나, 자발적인 법사상 수용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어 자발적인 사법제도 도입은 이뤄지지 못하였다.

결국 1910년부터 1945년 일제식민지배 당시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법률과 법의 운용체계 등이 한국에 강제적으로 이식되었고, 그것이 모태가 되어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한국법제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형법에 관하여는, 1905년의 우리 형법대전이 1907년의 일본 형법전으로 대체되었고, 그 후 일부 변형만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본 법령의 연구와 기본적인 제도의 운용은 일본의 것에 기초를 두고 있고, 그에 따라 판례도 많은 부분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수많은 법 관련 논문에서 일본법제에 대한 고찰이 필수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때문에 일부 판례는 일본법에 근거한 일본판례를 그대로 원용하여 법과 판례가 유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해방 70년 이후 우리의 사법해방은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하늘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고, 문화적 산물은 주변의 문화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며, 인류보편의 문화가 반영되어 지역적으로 유사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법문화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리와 지리적, 역사적으로 연관 있는 일본의 그것과 유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의 법 도입과정은 어느날 들이닥친 문명인이 야만인에게 갑자기 자신들의 옷을 입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일방적으로 진행된 까닭에 너무도 생소하였다.

법과 법제의 독립을 위해서는 많은 법조인과 법학자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재를 국가 재건과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투입해야 했기 때문에 방대한 법제 독립을 완성할만한 법조 인적자원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많은 기득 법조인들은 법조인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도 법조인들의 수가 법제의 독립을 완수하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법조인들 스스로 사명감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국가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법조인들을 법제 독립투사로 양성하기 위하여 투자를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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