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특이한 직업을 소개하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 변호사를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변호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극한직업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에 100%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마는 변호사는 아마도 객관적으로 극한직업임에 틀림없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얼마 전 대한변협에서 발표한 '변호사 직무스트레스와 정신건강과의 관련성' 설문조사에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 19.5%가 스트레스 고위험군에 속해 있으며 75.1%는 잠재적 위험군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 어떤 자료에 따르면 변호사 평균 수명이 일반인에 비해서 6세정도 낮다고 하며, 변호사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라고 한다. 사망원인 1위는 암인데 암의 주요한 원인이 스트레스라고들 하는 것을 보면 변호사 사망원인 1, 2위가 공히 스트레스와 연관지어져 있는 것이다.

필자의 지인들은 필자를 긍정과 낙천의 화신으로 부른다. 게다가, 골절이 되어도 이를 모르고 푹 잘만큼 자극에 매우 둔감해 종종 주변을 놀래키곤 한다.

어느모로 보나 필자는 심각한 스트레스와는 인연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필자 역시 과중한 업무와 그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로 정신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는 것을 보면 변호사들의 스트레스 순위는 아마도 최상위권을 달릴 것으로 보인다.

나만의 일이면 내가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던 삽으로 밥을 먹던 무슨 상관이랴! 그러나, 변호사는 타인의 대리인으로 사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보니, 변호사가 이끌어낸 결과는 승소든 패소든 자기의 의뢰인에게 귀속되므로 변호사는 업무에 임함에 있어 나를 위한 것 그 이상으로 신경을 집중하고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변호사들이 시달리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그런 선한 직업적 양심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보통의 멘탈을 갖지 않고서는 변호사들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어서 회피의 문제가 아닌 극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한변호사회 회장 선거에서 어떤 후보가 강도 높은 업무, 가사와 육아 병행, 실업, 승소의 부담 등으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을 위해 심리상담, 직무 스트레스 검진 및 예방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겠다는 공약을 하여 많은 변호사들의 환호를 받기도 하였다.

변호사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미국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비해 변호사들이 우울증을 호소하는 비율이 3.6배나 높았다고 하며, 예일대 로스쿨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재학생의 70%가 정신건강상의 문제점을 호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하니, 이만하면 변호사라는 직업이 월드와이드 극한직업이 맞지 않을까?

변호사의 일상은 의뢰인의 일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업무의 연속이다. 그래서 선배 변호사들은 후배 변호사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롱런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변호사는 제3자로서 의뢰인의 감정에 이입되지 말고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라고 가르친다. 또한 그러는 것이 소송의 결과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들 한다. 하지만 변호사도 사람이고 보면 인간적으로 나에게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쉬울 리 없다.

많은 직업은 그 직업의 특성에 따라 장ㆍ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과한 스트레스로 남들보다 일찍 사망할 가능성이 높고,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를 비롯한 여러 변호사들이 다른 직업마다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높은 수입, 사회적 명성, 혹은 화려한 삶 때문일까.

적어도 필자는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하였고,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강렬히 원하지도 않는다. 단지 법률적 다툼에 심신이 지친 의뢰인에게 그들에게 힘을 보태어 줄 수 공인된 자격을 부여받았다는 것. 심지어 결과가 미흡해도 최선을 다한 변호사에게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들도 많다는 것. 그 덕에 아버지 세대와 같은 가난은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명을 갉아 먹어가며 스트레스로 쓰러지면서도 필자가 변호사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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