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법무부교정자문위원

필자가 대기업 법무팀에 있을때 우스개로 "업무에 실패한 직원은 용서되어도 회식에 실패한 직원은 용서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비슷한 버전으로 군인도 "작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아도 의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농담도 있다.

이는 본연의 업무에 관한 능력 보다 조직의 특성을 반영한 내부 질서 혹은 현실에 관한 감각이 유능함의 척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우스개다.

그렇다면 어떤 변호사가 유능한 변호사일까. 승소율이 높은 변호사? 법리에 능통한 변호사? 혹은 의뢰인의 마음을 잘 추슬러 주는 변호사? 유능한 변호사의 척도로서 위 첫 번째, 두 번째의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변호사의 본질적 업무와 관련된 것이고, 세 번째의 것도 감성적 측면이 가미되기는 하였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의뢰인의 힐링도 변호사의 본질적 업무와 연관된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척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직업 윤리적으로도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변호사들 업계현실을 반영한 유능함의 척도는 무엇인가? 변호사 내부적으로도 위의 기업 혹은 군대에서의 우스개와 비슷하게 "패소한 변호사는 용서받을 수 있어도, 수임에 실패한 변호사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변호사들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기본적인 의식주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활인인 까닭에 수임은 매우 중요하다. 수임이 없으면 승소를 위해 전력투구할 전제가 애초에 없어지는 것이니 어찌 수임에 목을 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수임이 유능함의 척도가 된다는 시각에서 본다면 필자는 보편적인 변호사에서 다소 어긋나 있다.

지방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법률상 분쟁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변호사라면 대개 승소가능성 및 승소범위에 대한 정답에 가까운 감을 가질 수 있다.

필자도 그러한 사건에 대한 수임은 여느 변호사처럼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 지방에 있는 우리 로펌의 인력과 인프라만으로는 쉽지 않은 사건들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종종 높은 보수가 약속된 사건일지라도 필자보다 더 좋은 결론을 도출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은 서울의 대형 로펌에게 사건을 의뢰하도록 한다. 물론 직접 대형 로펌을 찾았을 때보다 훨씬 저렴한 수임료로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사리 필자를 찾아온 의뢰인의 이익을 보다 더 위하는 방법이고, 필자 로펌의 다른 사건 의뢰인에 대한 의리라 생각한다. 높은 수임료를 약속받았기에 과도한 인력과 인프라를 그 사건에 집중하게 되면 다른 사건에 그만큼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의료서비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대수롭지 않은 병으로 여기고 동네 병원을 찾은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여 급히 전문적인 의료설비가 필요할 경우 해당 동네의사는 대학병원이나 규모가 더 큰 종합병원으로 트랜스퍼한다. 그것이 오히려 그 환자를 위해서나 장기적으로 동네 병원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것이다.

몇몇 변호사들은 그렇게 다른 변호사를 소개할 경우 그 후에 필자를 찾는 의뢰인들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뢰인들은 초기진단을 잘해서 최적의 대처를 조언한 필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법률적 조력이 필요할 때 다시 필자를 찾아주기도 하거니와 협업관계 있는 다른 로펌에서는 우리 로펌이 강한 분야의 사건을 트랜스퍼해주기 때문이다.

적은 인구와 열악한 경제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몇몇 유목민족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그들은 초원의 길에서 이동을 하면서 여러 문화를 섭렵하고 문화의 유통과 융합을 통해 강성해졌고 종국엔 세계를 재패하였다. 필자는 그 힘을 네트워크와 그를 활용한 정보 공유 능력에서 찾는다.

앞으로 변호사도 자신의 깜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강자와 유대하고 배울 것은 철저히 배워나가는 유연성으로 강자의 역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존과 발전의 필요조건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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