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정봉수 법률사무소 천우 변호사

요즘 케이블티비방송국 tvN의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가 연일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방영중이다. 서울 쌍문동의 한 골목을 배경으로,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에피소드들을 풀어나가는 형식의 드라마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필자도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동시대의 추억을 간직한 한 사람으로, 그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기억의 단편들이 다시금 생각나고, 극 중에 보이는 여러 소품들이 눈에 친숙하게 다가온다.

한 동네 살던 친구들과 밤새워 놀던 일들, 가족 간의 갈등과 사랑, 유선전화만 있던 시절에 데이트 장소가 엇갈려 5시간을 한 장소에서 기다렸던 일 등등. 그중 특히 나의 가슴을 울렸던 것은 극 중 성동일의 첫째 딸 성보라(류혜영 분)가 사법시험공부를 시작하는 부분이었다.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법대 진학을 포기하고 타과를 지원한 성보라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성동일이 친구를 위해 연대보증한 채무가 변제되면서 온전히 월급을 받게 되어 생활이 나아지자, 성보라를 앉혀 놓고 예전에 포기했던 사법시험에 대한 꿈에 도전해 볼 것을 권유한다. 성보라는 고민 끝에 사법시험을 볼 것을 결심하고, 짐을 바리바리 차에 싣고 쌍문동을 떠나 신림동으로 향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서민은 집안에 누군가가 사법시험이나 고시공부를 한다면 집안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시험공부를 일단 시작하게 되면 대략 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며 그 동안 대부분의 수험생은 생산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수험생의 생활비는 가족이나 지인이 부담하게 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고시원비, 식사비, 책값, 학원수강료 등등 그리고 수험생 자신의 기회비용과 국가가 떠안는 사회적 비용까지 계산하게 되면, 요즘 말로 과연 가성비가 있는 지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그 기약 없는 시험에 합격하면 가성비를 떠나 영광과 명예의 빛 세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영광의 빛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사법시험 통계상 극 중 성보라가 지원했을 1990년 사법시험의 1차 지원자 수는 1만4천365명이고 최종 합격자 수는 298명이었다. 직전 해 1차 합격자는 당해 1차가 면제되는 것을 감안 하면 연2만7천794명이 지원하여 298명만이 합격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즉 1990년 사법시험 합격의 영광 뒤에는 연 인원 2만7천496명 약 90%의 불합격자가 존재했다. 이들 불합격자 뒤에 있던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 그림자는 더욱 어둡고 길다.

합격의 드라마가 있다면 불합격의 비극도 엄연히 존재한다. 경쟁에서 희비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2만7천496명 한명 한명에게도 성보라와 같은 인생의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1990년 사법시험에 좌절한 90%에 달하는 수험생들은 각자의 스토리텔러가 돼서 사회 어디서인가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다만 혹시 신림동 윗동네 고시원 한 귀퉁이에서 아직도 '사법시험 합격'을 위하여 공부하고 있을 그 때의 스토리텔러가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는 없다.

사법시험은 희망의 사다리란 말이 요즘 많이 들린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2016년 지금 법조인이 되는 것은 사회의 여러 직역 중 하나의 직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일 뿐 '희망'이란 말은 적절치 않다. 게다가 '위와 아래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한 '사다리'라는 단어는 사회계층의 위와 아래를 인식하고 이를 법조인이라는 사다리로 오른다는 의미가 함축된 말로 이 또한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사법시험은 2007년 법조인 양성을 법학전문대학원에 맡기는 '법학전문대학 운영에 관한 법률(로스쿨법)'이 통과되면서 폐지로 가닥이 잡혔다. 또한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신뢰보호를 위해 10년 동안 유예기간을 주어 2017년에 폐지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사회는 변화한다. 제도도 역시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변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응답하라 1988'식의 제도는 2016년 현실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2016의 모습으로 1988에 응답해 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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