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 법무부 교정자문위원

대법원까지 다투었던 서울 대형 로펌과의 치열한 재판이 얼마전 필자의 승소로 최종 확정되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2년여 동안 점점 판이 커지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 필자의 마음속의 압박은 더욱 커졌었다고 지금에야 고백한다. 그러나 결국 시골 변호사의 승리로 재판이 끝났다. 수많은 증거와 증인이 등장하였고, 그 사이 상대방의 회심의 일격같은 자료들이 튀어나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랴. 어찌보면 월등한 인프라를 가진 서울 대형 로펌의 시각에서는 시골 변호사의 이런 저항과 그로부터 비롯된 지금의 결과가 어쩌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정상적 지식을 가진 변호사끼리의 소송전이라면 이길 재판은 이기는 것이고, 지는 재판은 지는 것이라는 믿고 있기에, 이번 승소로 필자의 능력치를 과대 포장하고픈 마음은 없다. 오히려, 대형 로펌에 위탁하여 보다 마음 편히 결과를 낙관하면서 기다릴 수 있었던 큰 회사가 낙향한 젊은 변호사의 상담을 듣고, 일체의 사건을 위임하고 무한신뢰를 주어 대법원까지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다. 서울의 유명한 로펌과의 치열한 기업관련 소송건은 필자와 같은 시골 변호사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경우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도 과거 대기업 법무팀에서 근무했던 시절에는 잠재 소가가 천억원이 넘는 재판을 담당한 적도 있고,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적법성 자문이나, 기업 전체의 노동구조에 관한 자문등 소위 '엣지'있는 업무들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때는 필자 스스로 지금과 같은 시골 변호사로서 살아갈 줄은 상상할 수 없었다.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낙향해 새 삶을 살고 있는 지금 필자의 가치를 높게 보시고 이제까지 지급했던 자문료의 몇 배를 주고서라도 법률자문역을 담당케 하는 향토 기업인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필자는 동네 어르신끼리의 통행에 관한 다툼, 지인끼리의 소액 손해배상 다툼, 남에게 말 못할 가정문제에 대한 다툼 등 당시 대기업 법무팀의 시각에서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다툼 속에서 때로는 중재자로 때로는 한 쪽의 입이 되어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소가가 얼마가 되었든 재판의 당사자가 느끼는 소송의 무게는 항상 무겁기 마련이다. 그리고 송사라는 것은 이기면 덜 다치고 지면 크게 다치는 일이서 어차피 당사자의 손해는 예상되어 있는 싸움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소송에 이르는 과정의 치열함이나 감정소모는 개인간의 소송쪽이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그 재판에 인생을 걸고,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경우가 기업간의 다툼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는 개인간의 재판에서는 돈에 의한 의무감 보다 더 큰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사명감의 정체는 이웃으로서 "우리동네에서는 그런 불법한 상황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필자의 "동네 주민정서"때문이 아닐 런지. 필자도 대규모 M&A, 기업간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건 재판, 금융자문, 국제소송 등의 소위 엣지있는 업무에 대한 선망이 없지는 않다. 그런 업무를 하는 변호사님들은 나름의 애환을 설명하지만, 필자같은 시골변호사에 비해 수입도 월등하고, 스펙도 화려하다.

하지만, 사무실 창밖의 나지막한 아파트들과 한적한 공원, 그리고 멀리 산이 보이는 약간은 고즈넉한 풍경, 필자가 진심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에 승패를 떠나 고마워하시는 의뢰인들, 지나가다 들렸다면서 밥은 먹고 일하냐면서 전해주는 빵과 커피. 이러한 고향 풍경과 따뜻한 인정이 필자를 시골변호사로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큰 힘이 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마약과 같은 시골변호사의 행복을 평생 버리지 못하고, 이웃집 변호사로 계속 남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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