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금가면 유송리 65-5번지에 위치한 김생사지(충북도기념물 제114호)에는 여러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 중국에서 해동의 서성(書聖)이라고 일컬었다는 김생이 이곳에서 두타행(頭陀行:의식주에 집착치 않은 출가생활)을 닦았다는 기록과 더불어 김생제(金生堤)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김생사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남한강 여울 소리때문에 정신집중을 시키지 못할때 김생은 백일기도를 통해 여울소리를 없앴다는 전설 한토막이 전해진다. 여울은 있으되 소리가 없다하여 사람들은 이곳을 「벙어리 여울」이라 부른다.
 이 벙어리 여울은 인근의 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흔히 중앙탑이라 부르는 탑평리7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부터 지금까지 1천 수백년간 별별 풍상을 겪어왔으나 남한강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의 물난리도 겪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기단부를 튼튼히 하고 높게 쌓은 덕분도 있지만 석탑 상류에 있는 김생제방과 창동마애불이 급한 물살을 완화해준 공법에 그 비결이 있는듯 하다.
 지난 봄, 김생사지는 충청대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된 바 있는데 책임조사원인 장준식 교수는 김생제로 볼 수 있는 석축이 일부 확인됐고 절터 곳곳에서 다듬은 석재와 자역 석재를 이용하여 배수시설을 만든 점이 특이하다고 밝혔다.
 김생사지 앞은 물살이 세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살이 김생제에서 한번 부딪히고 세력이 완화된 물살은 탄금대 아래에서 달천과 합류한다. 물살이 무디어지는가 했더니 달천의 물살이 본류를 치고 들어와 다시 거세진다.
 현지 사람들은 남한강 본류를 「암물」이라고 하고 본류에 합류되는 달천을 「숫물」이라고 부른다. 쐐기 꼴로 본류를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생긴것 같다. 지류가 본류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물살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다시 속도가 붙은 물살은 탄금대 아래 창동마애불에 부딪히며 또 숨을 죽인다. 속도가 붙었다 떨어지기를 여러번한 물살은 이내 부드러워져 중앙탑을 범하지 않고 충주CC쪽으로 슬며시 흘러간다.
 합수머리로 가속도가 붙은 물살이 상류로 부터 아무런 완충작용도 받지 않고 다이렉트로 하류로 흐른다면 중앙탑도 천년세월을 버텨내기 힘들었으리라는 전문가의 분석이다.
 삼각함수도 모르던 시대에 어쩌면 이렇게 절묘한 공법이 나왔었을까 탄성이 절로 우러난다. 김생사지가 길 건너편 산 기슭을 마다하고 강변에 들어선 것도 그런 이유인것 같다.
 물살 달래기를 위한 가람배치는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남한강변 김생사지에서 찾아지고 있는 것이다.
 가람(강)과 가람(伽籃:절)의 절묘한 호흡이 아닐 수 없다. 한 유적이 다른 유적을 위해 봉사하고, 그리하여 상생의 해법을 자연속에서 찾아가는 선조들의 슬기를 여기서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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