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칼럼] 정봉수 변호사

누구에게나 착각은 자유다. 헌법 조문 어디에도 착각이라는 자유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낼 근거는 없지만, 사람들은 흔히 착각은 자유라는 말을 한다. 다만 자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처럼 착각이 일으키는 결과를 수습하는 것은 착각한 사람의 책임과 의무이다.

우리 민법은 착각에 대해 원칙적으로 관대하지 않다.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는 효력이 있다는 것이 우리 민법의 기본 입장이다. 법은 국가와 사회, 개인 간의 법률관계의 안정을 위해 작동해야하는 성격을 타고났으므로, 착각으로 인해 일어난 법적관계에 대해 개개인의 사정을 일일이 들어줬다가는 법의 존재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의사주의보다는 표시주의를 비중 있게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법도 인간이 만든 것인지라 원칙에 대한 예외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다. 우리 민법 제109조는 착오로 인한 법률행위를 한 경우 예외적으로 그 효과를 취소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조항이다. 민법 제109조 제1항은 "의사표시는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취소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 제1항 앞부분 규정에 따르면, 착오로 법률행위를 한 경우 이를 취소하려면 '내용'의 착오라는 요건과 '중요부분'에 착오라는 요건이 있어야 한다. '내용'의 착오는 미국달러가 계약의 내용이었으나 호주달러로 계약서에 표시한 경우 등을 의미한다. 이는 흔히 동기의 착오와 구별되는데, '동기'의 착오는 토지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토지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수하는 경우같이 계약의 '동기'에 착오를 일으켜 법률행위를 한 것을 의미한다.

판례는 내용의 착오는 취소할 수 있으나, 동기의 착오는 그 동기가 계약서 등에 표시되어 있어야만 취소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중요부분'이란 고려청자가 진품인 것으로 믿고 계약했으나 사실은 모조품인 경우처럼, 모조품임을 알았으면 계약하지 않았을 것이 매수인의 입장에서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확실한 정도로 중요한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어 취소할 수 있는 경우에도, 민법 제109조 제1항의 뒷부분처럼 착오가 표의자의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면 그 법률행위는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는 없다. '중대한 과실'은 표의자의 직업, 행위의 종류, 목적 등에 비추어 보통 요구되는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것을 의미한다.

개인 간에 토지를 매매하는 경우 매수인은 매수하려는 토지가 매매계약서 상의 바로 그 토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토지대장, 임야도등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만약 착오로 다른 토지를 사게 된다면, 그 매매는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이기는 하지만 매수인은 중대한 과실의 책임을 벗어나지 못하여 그 매매를 취소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 항상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는 없다. 누구나 한번쯤은 굳게 믿고 있었던 자신의 기억이나 합리적 신념이 틀릴 수도 있음을 경험한다.

하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일이 착오라고 해도,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법률적 영역에 관해서는 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신중함과 법률전문가상담이 필요하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사태는 피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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